인간의 행동과 심리를 결정하는 보이지 않는 원동력으로 ‘무의식’의 세계를 최초로 체계화한 지그문트 프로이트(왼쪽)와 행동경제학의 뿌리가 된 ‘의사결정 이론’을 확립한 대니얼 카너먼 프린스턴대 교수. [사진=퍼블릭도메인·연합뉴스]
“나는 충분히 생각한 뒤 결정했다.”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어떤 물건을 사거나,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거나, 한 사람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도 모두 자신의 이성적 판단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지난 100여 년 동안 심리학과 신경과학은 인간의 의사결정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현대 학계의 연구 결과는 인간이 의식적으로 판단하기 이전부터 무의식이 이미 강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 준다.
무의식을 처음 체계적으로 연구한 사람은 오스트리아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이다. 그는 1900년 출간한 ‘꿈의 해석’에서 인간의 행동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욕망과 기억, 억압된 경험의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하였다.
이어 ‘일상생활의 정신병리학’에서는 말실수와 건망증도 무의식의 작용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보았다. 오늘날 프로이트의 모든 이론이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무의식을 인간 정신 연구의 중심 주제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그의 학문적 공헌은 여전히 높게 평가된다.
무의식 연구는 이후 정신분석을 넘어 인지심리학과 신경과학으로 발전하였다.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인간의 사고를 두 체계로 설명하였다. 하나는 빠르고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시스템 1이고, 다른 하나는 느리고 신중하게 사고하는 시스템 2이다.
얼굴을 알아보고, 익숙한 길을 걷고, 위험을 직감하는 일은 대부분 시스템 1이 담당한다. 반면 복잡한 계산이나 논리적 추론은 시스템 2가 수행한다. 카너먼은 인간이 항상 깊이 생각한 뒤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자동적으로 판단한 뒤 의식이 이를 검토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하였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도 ‘바른 마음’에서 비슷한 결론을 제시하였다. 그는 인간의 도덕 판단은 먼저 직관적으로 이루어지고, 이성은 그 판단을 설명하거나 정당화하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그는 ‘코끼리와 기수’의 비유로 설명하였다. 거대한 코끼리는 직관과 감정이며, 기수는 이성이다. 기수가 방향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실제 힘은 코끼리가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신경과학도 이러한 설명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미국의 신경생리학자 벤저민 리벳은 1983년 실험에서 참가자들에게 손가락을 움직이도록 하였다.
그 결과 참가자가 “지금 움직이겠다”라고 의식적으로 느끼기 수백 밀리초 전에 이미 뇌에서는 준비전위(Readiness Potential)가 나타났다. 이는 의식적 결정보다 먼저 뇌가 행동을 준비할 수 있음을 보여 준 연구이다.
그러나 이 실험이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은 아니다. 리벳 자신도 마지막 순간 행동을 멈출 수 있는 ‘거부권(veto)’의 가능성을 제시하였으며, 오늘날에도 이 실험의 해석을 둘러싼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포르투갈 출신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데카르트의 오류’에서 감정과 무의식이 합리적 판단에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제시하였다. 그는 감정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손상된 환자들을 연구하였다.
이들은 논리력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일상적인 의사결정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이는 인간이 감정을 제거할수록 더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라는 무의식적 신호가 있어야 효율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이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확인된다. 광고회사는 제품의 성능만 설명하지 않는다. 자동차 옆에는 성공한 사업가를 세우고, 음료 광고에는 행복한 가족을 등장시키며, 향수 광고에는 유명 배우를 등장시킨다.
제품과 긍정적인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연결하면 소비자의 무의식 속에 좋은 인상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실제 소비자 심리 연구에서도 동일한 제품이라도 유명 브랜드를 붙였을 때 더 높은 평가를 받는 사례가 반복적으로 보고되었다.
정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유권자는 정책을 비교하여 투표한다고 생각하지만, 후보자의 얼굴, 말투, 반복적으로 접한 이미지와 상징도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물론 정치적 선택은 정책, 경제 상황, 가치관, 사회적 경험 등 다양한 요인이 함께 작용한다.
따라서 모든 정치적 선택을 무의식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무의식이 중요한 변수라는 점은 정치심리학 연구에서 꾸준히 확인되고 있다.
역사 인식도 예외가 아니다. 사람은 학교 교육, 언론, 영화, 드라마, 사회 분위기를 통해 특정한 역사상을 반복적으로 접한다. 이러한 경험은 무의식 속에 축적되어 새로운 사료를 접하더라도 기존의 인식을 쉽게 바꾸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역사학에서는 사료 비판과 자기 성찰을 중요한 연구 방법으로 삼는다. 연구자 자신의 선입견과 전제를 점검하지 않으면 객관적인 역사 연구가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 존재인가? 현대 심리학과 신경과학은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무의식은 의식에 강한 영향을 미치지만, 의식도 학습과 성찰을 통해 무의식을 변화시킬 수 있다.
새로운 지식을 반복적으로 배우고, 자신의 편견을 돌아보고, 다양한 경험을 축적하면 뇌의 연결 구조도 변화한다. 이를 신경가소성이라고 한다. 오늘의 학습은 내일의 무의식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결국 인간은 무의식과 의식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존재이다. 무의식은 빠른 판단과 효율성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편견과 오류도 만들어 낸다. 의식은 이러한 자동 반응을 점검하고 수정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따라서 “무의식이 의식을 결정한다”는 표현은 현대 학계의 연구 성과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보다 정확한 표현은 다음과 같다.
무의식은 의식에 강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인간은 성찰과 학습을 통해 그 영향을 이해하고 수정할 수 있는 존재이다.

◆ 松山(송산) 정광제
시인이자 역사·철학 연구자. 전 이승만학당 이사. 현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고문이자 철학 포럼 리케이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네 권을 출간했고, ‘후크고지의 영웅들’을 공동 번역했으며 인문서 ‘신화가 된 조선’ ‘다다미 위의 인문학’ ‘자유주의자의 그람시 읽기’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