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위장 북한 IT인력 (PG) [연합뉴스]
북한 정권의 주요 외화벌이 수단인 정보기술(IT) 노동자의 해외 위장취업 수법이 인공지능(AI) 발전과 함께 진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2일(현지시간) 다큐멘터리 영상 및 기사에서 "북한이 미국 기업들에 비밀 노동력을 구축해왔다"며 "김정은 정권을 위한 돈벌이를 위해 도난당한 신원 정보, AI 도구, 미국 내 공범들을 활용, 원격 일자리를 속임수로 얻어냈다"고 보도했다.
WSJ은 '이글 비전'(Eagle Vision)이라는 코드명을 쓰는 인물이 수장인 한 소규모 조직의 브라우저 기록, 이메일, 도용된 개인 정보, 회의 화면 녹화 영상 등을 1년여간 추적해 북한 IT 노동자들이 어떻게 서방 국가의 기업에 위장 취업해 돈을 벌고 있는지를 자세히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 조직은 석 달여 간 1천개 이상의 미국 및 영국 기업에 입사 지원했고, 최소 9곳으로부터 채용 제안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러한 북한 조직은 팀원들이 면접 등을 할 때 훈련이나 감시 목적으로 화면을 녹화한다고 한다. 영상 중 하나에서는 IT 노동자가 면접 시작 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직무와 관련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챗GPT에 물어보는 것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 조직이 서방 회사에 지원하는 거의 모든 단계에서 AI가 사용됐다. 특히 기업의 채용 담당자들이 이들을 적발하는 데 갈수록 능숙해지자 얼굴 이미지를 바꾸는 AI 도구를 활용하기도 했다고 WSJ은 보도했다.
일단 채용이 되면 미국 내 조력자가 활용된다. 이들이 위장 취업한 회사는 미국 내 특정 지역의 조력자에게 노트북을 보내고, 북한 조직은 이 조력자에게 비용을 지불하고서 자기들이 원격으로 접속해 업무를 한다.
이른바 '노트북 농장'이 꾸려지는 것인데 한 연방수사국(FBI) 당국자는 다큐멘터리 영상에서 "북한은 미국 내에서 그 노트북을 수령할 파트너가 필요하다"며 "우리 팀은 북한 IT 노동자뿐 아니라 그 생태계가 운영될 수 있도록 돕는 미국인까지 총 39명을 체포하거나 기소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FBI 요원은 "현재까지 우리가 적발한 가장 큰 노트북 농장에는 약 100대가 있었다"며 "모든 노트북 농장에 노트북이 수십 대씩 있다고 치더라도 이게 제대로 작동하려면 수천 명의 미국인이 연루돼야 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미국 내 조력자는 북한 조직을 위해 은행 계좌를 개설하고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는 한편 회사 회의에 대신 참석하기도 한다. 실제 미 오하이오주의 한 남성은 회사 회의에 참석하기도 했다면서 연봉 7만5천 달러(약 1억원)짜리 직업이라면 이를 반반씩 나눴다고 소개했다.
WSJ은 북한 조직에 의해 신원이 도용당해 은행 계좌를 개설하거나 대출을 받거나 집을 임대할 수 없는 상태가 된 조지아주 미국인 남성의 사연을 전하기도 했다.
이러한 수법으로 일부 북한 IT 노동자는 연간 최대 30만 달러(약 4억3천만원)를 벌어들이고 있었고, 이러한 자금은 해외 은행 계좌, 배달 서비스, 가상화폐 거래, 자금 세탁 업자 등 복잡한 여러 단계를 거쳐 북한으로 흘러 들어간다.
WSJ은 '이글 비전'의 가상화폐 지갑을 찾아내 분석·추적한 결과 북한의 무기 프로그램과 관련해 미국의 제재를 받은 기업을 찾아낼 수 있었다고 전했다.
FBI 당국자는 WSJ에 "미 재무부는 일부 사례에서 이들의 소득 중 최대 90%가 북한 정권으로 돌아간다는 걸 확인했다"며 "개개인이 큰돈을 벌지 못하지만, 전체적으로 수백만 달러의 자금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및 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으로 유입되고 있는 것이며, 이들의 목표는 미국 밖으로 자금을 반출할 때 적발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