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국민의 사생활을 어디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가
최근 정부가 실거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GPS 위치정보를 활용하고 방문조사를 실시하며, 필요에 따라 통신·카드 이용내역까지 확인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사실관계와 구체적인 적용 범위는 따져봐야 한다. 그러나 만일 이것이 실제 정책으로 시행된다면 문제의 본질은 행정 효율성이 아니다. 국가가 국민의 사생활을 어디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가라는 자유민주주의의 근본문제다.
자유주의의 출발점은 국가권력에 대한 불신이다. 국민을 믿을 수 없으니 국가가 감시해야 한다는 생각이 아니라, 권력은 언제든 남용될 수 있으므로 국가의 손발을 법률로 묶어놓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헌법은 국가가 국민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범위를 제한하고 적법절차를 요구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7조 역시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물론 정부에는 실제 거주지를 확인해야 할 행정적 필요가 있다. 위장전입이나 부정수급, 허위신고를 방치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문제는 그것을 확인하는 수단이다. 특정한 불법행위가 의심된다면 법률에 따라 조사하면 된다.
그런데 행정기관이 일반 국민의 GPS 위치정보를 확인하고 공무원이 집을 방문하며, 통신자료와 카드 이용내역까지 동원하는 체제가 만들어진다면 차원이 달라진다.
카드 이용 내역을 생각해 보자. 카드에는 단지 주소가 찍히는 것이 아니다. 어느 동네에서 밥을 먹었는지, 어느 서점에 갔는지, 어느 병원과 약국을 이용했는지, 어디에서 장을 봤는지가 남는다.
위치정보까지 결합하면 어느 시간대에 어느 지역에 있었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 통신자료까지 더해지면 한 사람의 생활반경을 상당한 수준까지 재구성할 수 있다.
이런 정보를 국가가 확보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자유민주주의와 행정국가를 혼동하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에서는 국가가 할 수 있다는 사실보다 국가가 해도 되는가를 먼저 묻는다.
더구나 디지털 시대의 국가 감시는 과거의 감시와 성격이 다르다. 예전에는 사람을 따라붙어야 했다. 지금은 데이터 몇 종류만 결합하면 된다. GPS, 신용카드, 교통카드, 통신자료, 행정정보가 결합되면 개인의 생활은 하나의 데이터 지도처럼 펼쳐질 수 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국가의 정보수집 비용은 낮아진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권력에 대한 법적 통제는 오히려 더 엄격해져야 한다.
여기에서 자유주의 보수의 태도가 중요하다. 보수라고 해서 국가권력이 강하면 무조건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자유주의적 보수주의가 원하는 것은 강한 국가가 아니라 법률에 묶여 있는 국가다.
국방과 치안, 법질서를 지키는 데는 강해야 하지만 개인의 집과 통신, 재산과 사생활 앞에서는 함부로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 제한 정부와 법치주의가 자유주의 보수의 기본 원칙인 이유다.
특히 위험한 것은 행정 권력에는 한 번 확보한 권한을 다른 목적으로 확대하려는 속성이 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실거주 확인이라고 한다. 다음에는 부정수급 방지라고 할 수 있다.
그다음에는 세금 체납이나 각종 행정조사에도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예외적으로 사용하던 수단이 어느 날 일상적인 행정 수단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권도 생각해야 한다. 지금 자신이 지지하는 정부가 만든 제도라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 정권은 바뀐다. 오늘 내가 지지하는 사람이 가진 권한은 내일 내가 가장 싫어하는 정치세력이 갖게 된다.
그래서 자유주의자는 정책을 평가할 때 “좋은 사람이 이 권한을 어떻게 사용할까”가 아니라 “내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이 권한을 가져도 괜찮은가”라고 묻는다. 그 질문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할 수 없다면 권한 자체를 제한해야 한다.
위장전입과 부정수급은 잡아야 한다. 그러나 국민 전체를 잠재적인 거짓말쟁이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구체적인 혐의가 있다면 조사하고, 필요한 경우 법원의 통제를 받고, 최소한의 정보만 사용하면 된다. 행정 편의를 위해 국민에게 자신의 일상이 결백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도록 요구하는 사회는 자유사회라고 부르기 어렵다.
국민은 국가의 관리 대상이기 전에 자유로운 시민이다.
정부가 국민의 위치와 통신, 소비생활을 들여다보려고 한다면 국민이 먼저 설명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가 먼저 설명해야 한다. 어떤 법률에 근거하는가? 어떤 경우에 조사하는가? 누가 자료를 볼 수 있는가. 얼마 동안 보관하는가? 다른 기관과 공유하는가? 거부할 권리는 있는가? 잘못된 조사에 대한 구제수단은 무엇인가?
큰 정부보다 무서운 것은 국민의 일상을 너무 많이 알고 있는 정부다. 국가가 국민을 믿지 못해 GPS와 카드내역까지 들여다보기 시작한다면, 국민 역시 그런 국가를 믿어야 할 이유가 줄어든다. 자유민주주의에서 감시의 기본 방향은 국민에서 국가로 향해야 한다. 국가에서 국민으로 향해서는 안 된다.

◆ 松山(송산) 정광제
시인이자 역사·철학 연구자. 전 이승만학당 이사. 현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고문이자 철학 포럼 리케이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네 권을 출간했고, ‘후크고지의 영웅들’을 공동 번역했으며 인문서 ‘신화가 된 조선’ ‘다다미 위의 인문학’ ‘자유주의자의 그람시 읽기’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