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연합뉴스]
‘사회정의를바라는 전국교수모임(정교모)’은 최근 이재명 대통령과 청와대가 추진하는 개헌 논의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한다. 정교모는 이번 개헌 논의가 국가의 미래와 헌정질서를 위한 진지한 논의라기보다,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 회피와 정계 개편을 위해 악용되는 ‘개헌 이슈’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발단은 지난 7월 초 이 대통령이 국민의힘 중진 의원들과 가진 비공개 골프 회동이다. 참석한 김태호 의원 등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임기를 단축해서라도 개헌해야 한다"라며 분권형 권력구조 개편에 공감을 표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8월 14일 "국회 권한이 강화된 4년 중임 대통령제의 국민 수용성이 가장 높다"라고 밝혔으며, 이 대통령도 SNS를 통해 이를 재확인하며 임기 단축 수용 가능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야당 중진과의 비공개 회동으로 개헌 논의에 불을 지핀 것은, 개헌을 '초당적'인 이슈로 포장해 야당 내부 균열을 유도하고 여론을 떠보려는 정치적 책략으로 읽힐 여지가 크다. 개헌이 정권의 위기 탈출용 카드로 이용되고 있음을 알고도, 8월 15일 여전히 “이제라도 여야 정당 간에 진정성 있는 개헌 논의가 시작되길 바란다”라고 밝힌 김태호 의원의 행태는 국민의 질타를 받아 마땅하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4년 연임제와 임기 단축 수용을 공약했고, 이를 2025년 5월·7월과 2026년 8월까지 반복해서 표명했다. 그러나 한국갤럽의 8월 11~13일 조사에서 국정 수행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처음 앞지르는 데드 크로스(46% 대 44%)가 발생한 직후 개헌론이 급부상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주가 하락, 부동산 가격 폭등, 대미 통상 마찰 등 국가적 현안이 산적한 가운데 개헌 이슈를 내세우는 것은 사법 리스크 회피를 위한 퍼즐 맞추기에 가깝다. 청와대가 ‘공약의 일관성’을 내세우지만, 갑작스럽게 개헌을 부각하는 것은 국가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심모원려(深謀遠慮), 즉 상황에 좌우되지 않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신중히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정치공학적 급처방으로만 보인다.
야권이 지적하듯 재임 중 정지된 형사재판 5건이 2030년 6월 이후 재개되는 만큼, 임기 변경 움직임을 사법 리스크 회피와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헌법 제128조 제2항은 임기 연장이나 중임 변경 개헌의 효력이 제안 당시 재임 중인 대통령에게는 미치지 않도록 규정하여 현직 대통령의 임기 연장·연임을 원천 차단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 정권의 추진 방식은 이러한 안전장치를 실질적으로 무력화하려는 시도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제왕적 대통령제 극복'과 '국회 권한 강화'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국민 여론 또한 우호적이지 않다. ‘펜앤마이크’·‘여론조사 공정’의 이달 9~10일 조사에서도 '현직 대통령부터 적용'은 31.2%에 그쳤지만, '다음 대통령부터 적용'은 57.1%로 나타나 현직 적용 반대 여론이 뚜렷했다.
현실적으로 개헌 추진의 성사 가능성도 매우 낮다.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과 국민투표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하며, 이는 민주당 단독으로는 불가능하다. 명분·여론·합의가 부족한 강행은 국가의 기본 질서를 정치판 재편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행위다. 개헌은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실행되어야지, 특정 정권의 위기 탈출용 카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설상가상으로 국민투표를 주관할 선거관리위원회의 신뢰는 크게 훼손되었다. 지난 6월 3일 지방선거에서 91개 투표소의 투표용지가 부족했고, 26곳에서 투표가 일시 중단되는 참정권 침해가 발생했다. 선관위 자체 진상규명위원회조차 "총체적 부실"을 확인하고 고위 관계자 12명에 대한 수사 의뢰를 권고하며 "선관위 해체에 준하는 혁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신뢰가 무너진 기관이 국가 근본규범을 바꾸는 개헌의 국민투표를 관리한다면, 그 결과의 정당성은 원천적으로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에 정교모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첫째,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개헌이 형사재판 회피 수단이라는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에게 임기 연장이나 연임·중임을 시도하지 않겠다는 뜻을 국민 앞에 분명히 선언하라.
둘째, 개헌은 국민적 공감대 위에서 신중히 추진되어야 할 백년대계다. 이미 국민 신뢰를 상실한 정권이 주도하는 개헌 추진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셋째, 선관위 사태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특검 수사를 먼저 실시하고,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선거 관리 체계를 확립한 뒤에야 국민투표를 수반하는 개헌을 논의해야 한다.
넷째, 이 정권과 개헌을 논의할 만큼 신뢰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야당 정치인이 있다면, 먼저 국민 앞에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힌 뒤 논의에 임하기 바란다. 다만 이러한 의사 표명에는 본인의 정치생명을 걸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개헌은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것이어야 하며, 정권의 위기 탈출이나 권력 연장을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악용되어서는 안 된다. 정교모는 국민과 함께 헌법 정신과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감시하고 투쟁할 것이다.
2026년 8월18일
사회정의를바라는 전국교수모임 (정교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