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세키요리를 처음 접하면 소꿉장난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릇은 작은데 숫자는 많다.
처음 일본에 왔을 때 감동한 먹거리, 그게 바로 ‘가이세키요리’라는 코스요리다. 화려한 그릇 한가운데 손가락만큼 음식이 놓여 있었다. 5분의 1이나 채웠을까? 나머지는 빈 공간이었다.
한 젓가락으로 집으면 끝나는 요리지만 그게 또 얼마나 맛있고, 멋있고 그랬는지 모른다. 요리의 시작부터 마침까지 마치 동양화 한 폭을 접하는 듯했다. 일본의 가이세키 요리(懐石料理)를 처음 만났을 때의 첫인상이다.
빈 곳을 두려워하지 않는 일본 요리
가이세키(懐石)를 글자 그대로 풀면 ‘돌을 품는다’는 뜻이다. 선승들이 수행할 때 추위와 허기를 견디기 위해 데운 돌을 품에 넣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이 수행이 다도와 결합하면서 차를 마시기 전에 내놓는 검소한 식사를 가리키게 되었다. 본래 밥과 국, 절임 정도의 소박한 음식이었다. 이것이 세월이 흐르면서 일본의 미적 감각이 더해지고 요리가 더해져 오늘날 료칸이나 일본 요리점에서 만나는 화려한 코스요리로 발전했다.
다만 다도의 가이세키(懐石料理)와 연회식 가이세키(会席料理)는 엄밀히 말하면 기원과 구성이 다르다. 오늘날에는 두 전통이 서로 영향을 주면서 일반인에게는 일본식 코스요리라는 이미지로 겹쳐 보이는 경우가 많다.
가이세키요리를 처음 접하면 소꿉장난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릇은 작은데 숫자는 많다. 작은 접시, 종지, 굽이 높은 그릇, 검은 칠기까지 음식에 따라 그릇이 달라진다.
서로 다르게 만든 요리를 한 접시에 모아 두지 않는다. 각각의 맛과 모양을 살려 작은 그릇에 하나씩 하나씩 따로 담는다. 그것은 음식 재료의 본연의 맛이 섞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에서다. 그릇 자체도 요리의 일부가 된다. 그리고 그릇에 담을 때는 그 음식 재료에 가장 어울리는 방법으로 세우기도 하고, 눕히기도 한다.
더 재미있는 것은 그릇을 음식으로만 채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단풍잎을 놓기도 하고 대나무 잎이나 꽃을 곁들이기도 한다. 봄에는 봄을, 가을에는 가을을 접시 위에 올려놓는다.
이렇게 일본 요리는 빈 곳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접시 한가운데 작은 음식 하나를 놓고 나머지를 과감하게 비워둔다. 그 빈 곳까지 포함해서 하나의 그림을 만든다. 먼저 눈으로 먹고, 그다음 입으로 먹는 음식이다.
가이세키의 또 다른 재미는 음식이 한꺼번에 나오지 않는다는 데 있다. 시작부터 끝까지 순서가 있다. 먼저 맛이 강하지 않은 전채가 나오고 술이 곁들여지는데, 주로 매실주 같은 과실주가 많다.
술은 취하기 위해서 마시는 것이 아니다. 식사의 시작을 알리고 주인과 손님 사이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며 입맛을 돋우어 준다. 요즘에는 운전을 하는 손님을 위해 무알코올 음료를 준비하는 곳도 많다.
이어서 검은색 계통의 칠기 그릇에 담긴 ‘니모노완(煮物椀)’이라는 요리가 나온다. 뚜껑을 열면 그 안에는 마치 작은 정원이 들어와 있는 것 같다. 가쓰오부시(다랑어 말린 것)로 우려낸 맑고 걸쭉한 국물을 자작하게 붓고, 거기에 데친 녹색 야채와 당근 익힌 것, 그리고 새우나 흰살생선과 마를 섞어 만든 경단(때로는 토란 삶은 것이 나올 때도 있다), 그 위에 노란 계란 지단을 얹어서 낸다.
한 폭 한 폭의 그림을 먹다
네 가지 색깔을 담은 이 요리를 접하면, 맛보다 먼저 색깔과 배치가 눈을 붙잡는다. 먼저 건더기를 젓가락으로 다 먹은 후에 그릇을 들고 국물을 마시는데, 처음에는 심심한 듯하지만 천천히 깊은 감칠맛이 올라옴을 느낄 수 있다.
일본의 가이세키에는 비워두는 아름다움이 있다. 접시를 음식으로 가득 채우지 않고, 계절과 색깔과 그릇이 들어갈 자리를 남겨두고, 그 사이에 빈 곳도 남긴다. [사진=박명미 작가]
다음으로 구운 생선이 나온다. 장식은 소금에 절인 생강 줄기로 하는데 끝부분의 빨간색이 꼭 들어가도록 조금 길게 자른다. 한국에서는 생강 줄기를 먹는 습관이 없지만, 하얀 생선 살과 붉은 생강 줄기가 또 눈을 즐겁게 해 준다. 비릿한 것을 먹고 난 후에 먹는 생강 줄기는,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요리가 된다.
그리고 이어서 잘게 썬 미역이 들어간 맑은국이 하나 나오는데, ‘하시 아라이(箸洗い)’라고 한다. 이 국은 마치 음악회나 연극의 인터미션 같은 역할을 하는데, 앞에서 먹었던 젓가락 맛을 잠시 끊고 입안도 정리한 뒤 다음 요리를 맞게 해 준다.
이제 식사의 후반전이다. ‘핫슨(八寸)’이라는 요리가 나올 차례인데, 이것은 요리 이름이 아니라, 접시의 크기를 가리킨다. 8촌(24cm) 정도 되는 비교적 큰 접시에 사계절의 산과 바다에서 나는 제철 식재료를 담아 계절을 표현하는 ‘메인요리’라 할 수 있겠다.
현대 료칸식 가이세키에서는 사시미와 구이, 고기 요리 등이 더해지면서 상당히 풍성한 코스가 되기도 한다. 술을 즐기는 사람들은 이 시간에 마음 놓고 즐기면 된다.
한국 사람에게 특히 재미있는 것은, 밥이 거의 마지막에 나온다는 점이다. 우리는 밥을 중심에 놓고 국과 반찬을 한꺼번에 펼쳐놓는다. 밥을 먹다가 고기를 먹고, 국을 떠먹다가 김치를 집는다. 여러 맛을 자유롭게 오간다.
가이세키는 반대다. 앞의 여러 요리를 충분히 즐긴 다음 마지막에 밥과 국, 고노모노(香の物)라 부르는 야채 장아찌 같은 것이 나온다. 밥은 배를 채우는 주인공이라기보다 긴 식사를 차분하게 마무리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진한 녹차와 요깡 같은 단 디저트로 마무리한다.
가이세키의 밥은 배를 채우는 주인공이라기보다 긴 식사를 차분하게 마무리하는 역할을 한다. [사진=박명미 작가]
그래서 가이세키를 먹고 나면 배에 남는 것보다 눈과 마음에 남는 것이 많다. 검은 칠기 뚜껑을 열었을 때 나타났던 작은 정원을 담은 것 같은 요리, 구운 생선 옆의 빨간 생강 줄기, 커다란 접시 한쪽에 놓였던 한 점의 음식, 그리고 음식보다 훨씬 넓었던 빈 공간이 기억에 남는다.
한국의 밥상이 풍성하게 차리는 아름다움이라면 일본의 가이세키에는 비워두는 아름다움이 있다. 접시를 음식으로 가득 채우지 않고, 계절과 색깔과 그릇이 들어갈 자리를 남겨두고, 그 사이에 빈 곳도 남긴다. 한꺼번에 차려놓고 먹는 즐거움과 하나씩 기다리며 먹는 즐거움의 차이다.
가이세키를 먹는다는 것은 여러 일본 음식을 차례로 맛보는 것만은 아니다. 작은 그릇 안에서 계절을 보고 느끼고, 음식과 그릇 사이의 여백을 즐기며 다음 요리를 기다리는 일이다. 한 상을 먹는 것이 아니라 한 폭 한 폭의 그림을 먹는 것. 처음 일본에서 가이세키를 만났을 때 내가 느꼈던 감동도 바로 이런 것이었다.

◆ 박명미 작가
일본 미식 여행 칼럼니스트. 이화여자고등학교 졸업, 일본 구마모토대학교 대학원 졸업(언어학 전공), 사가대학교·규슈산업대학교 한국어 강사. 저서로 한·일어 비교 연구서 ‘아나타는 한국인’(공저, 2006)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