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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해설] 박근혜를 호출한 건 ‘배신의 정치’
  • 김영 기자
  • 등록 2026-08-28 21: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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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무성·한동훈·조선일보, 중도·분권·상향식 공천으로 같은 방향
  • 부산서 한동훈 경쟁자 박민식 지원한 朴…연찬회서는 “정당 내 신의” 강조
  • 민주주의 형식보다 먼저 물은 희생과 책임…신뢰 없는 제도는 권력투쟁일 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27일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신뢰’와 ‘정당 내 신의’를 강조했다. 오른쪽은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와 부산 북갑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한동훈 의원. [사진=한미일보 그래픽]

박근혜 전 대통령을 다시 정치의 중심으로 불러낸 것은 박근혜 자신이 아니었다. 2016년 국정농단 사태 속에서 보수정권의 내부 방어선을 무너뜨렸던 정치의 방식이 이름만 바꿔 다시 나타났기 때문이다.

14년 만에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에 참석한 박 전 대통령은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라며 “정당 내 신의가 없으면 그 정당은 존립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밖의 적보다 내부 분열이 더 무섭다며 지도부를 중심으로 단결할 것도 주문했다.

의례적인 덕담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박근혜의 정치적 이력과 현재 국민의힘에서 벌어지는 권력투쟁을 겹쳐보면 의미가 달라진다. 자신을 믿고 선택한 당원과 동료를 위해 무엇을 희생했는가. 자신의 선택이 낳은 결과에 어떤 책임을 졌는가. 박 전 대통령은 중도·분권·상향식 공천이라는 제도적 언어보다 먼저 정치의 자격을 물었다.

부산에서 먼저 드러난 박근혜의 선택

박근혜의 재등장은 연찬회에서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다. 지난 6·3 지방선거가 출발점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대구와 충청, 강원, 울산, 경남, 부산을 돌며 국민의힘 후보들을 지원했다. 특히 5월 27일 부산 기장시장에서는 박형준 부산시장 후보와 함께 부산 북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국민의힘 박민식 후보의 지지를 직접 호소했다.

박민식의 경쟁자는 국민의힘에서 제명된 뒤 무소속으로 출마한 한동훈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한동훈을 거명하지 않았지만 한동훈의 경쟁자 손을 잡았다. 현장 일부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한동훈 보고 있나” “한동훈 잡아라”는 구호까지 나왔다.

부산은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의 정치적 본거지다. 김 전 대표는 장동혁 대표에게 한동훈·유승민·이준석과 통합하라고 요구했고, 한동훈이 부산 북갑에서 승리하자 “한동훈만이 해낼 수 있는 쾌거”라고 평가했다.

한동훈은 이후 김무성의 대표적인 정치 브랜드였던 상향식 공천을 보수 재건의 핵심 의제로 꺼냈다. 박근혜의 부산 유세는 결과적으로 한동훈을 직접 압박했고, 그 정치적 메시지는 한동훈을 앞세워 부산과 국민의힘에 다시 진입하려는 김무성식 비박 정치에까지 향했다고 볼 수 있다.

조선일보가 문을 열고 김무성이 방어선 허물었다

현재의 움직임을 이해하려면 2016년 탄핵으로 돌아가야 한다.

TV조선은 안종범 청와대 수석의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 개입 의혹을 처음 본격적으로 제기했다. 한겨레는 재단의 실질적 배후로 최순실을 실명 보도했고, JTBC의 태블릿PC 보도는 대통령 연설문 사전 유출이라는 물증을 제시했다.

박 대통령이 최순실에게 연설문 등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고 인정한 다음 날 조선일보는 사설 제목을 한마디로 뽑았다. ‘부끄럽다’였다. 이후 조선일보는 2선 후퇴와 조기 퇴진을 요구하다 탄핵을 불가피한 헌법 절차로 받아들였다. 보수 유권자와 새누리당 의원들이 현직 보수 대통령에게서 이탈할 명분을 제공한 것이다.

그 여론을 집권당 내부의 탄핵 찬성표로 전환한 핵심 인물은 김무성이었다. 박근혜 대선 캠프 총괄본부장이었던 김 전 대표는 2016년 11월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탄핵소추안은 찬성 234표로 가결됐다. 야당과 무소속 의석만으로는 통과가 불가능했다. 새누리당에서 최대 62표가 넘어온 것으로 추산됐다. 김무성이 혼자 탄핵을 만든 것은 아니지만, 그가 비박계의 문을 열지 않았다면 국회 가결 역시 어려웠다.

조선일보가 보수층의 방어막을 걷어냈고 김무성이 새누리당의 방어선을 허문 셈이다.

이름만 바꿔 다시 나타난 세 가지 언어

10년이 지난 지금 당시의 구도가 다른 이름으로 다시 나타나고 있다.

김무성은 한동훈을 끌어안으라고 요구한다. 조선일보는 한동훈 제명을 ‘비정상’이라고 비판하며 장동혁 지도부를 압박한다. 한동훈은 공천권을 당대표가 아닌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며 보수 텃밭의 80~90%를 상향식 공천으로 정하자고 주장한다.

세 주체가 하나의 지휘체계 아래 움직인다는 증거는 없다. 여기서 말하는 연결은 조직적 공모가 아니라 의제와 정치적 이해가 같은 방향으로 수렴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 공통분모는 중도 확장, 분권형 개헌, 상향식 공천이다.

중도는 본래 민생이어야 한다. 

물가와 일자리, 주거와 교육, 치안과 안보를 해결하는 능력으로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중도가 특정 세력의 복귀를 위한 배제의 언어로 사용되면 선거 레토릭으로 변한다. 탄핵 책임을 물으면 강경 보수, 당원 중심 정당을 주장하면 극단으로 몰아가는 방식이다.

분권도 누구에게 권력을 주느냐가 핵심이다. 

대통령의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것은 민주적 분권이다. 그러나 국민주권을 강화할 장치 없이 권한을 국회와 정당, 원내 중진에게 이전하는 데 그친다면 정치 엘리트의 권력 확대로 귀결될 수 있다. 권력이 여러 세력으로 나뉠수록 정치인을 부각하고 여론의 방향을 정하는 대형 언론의 영향력도 커진다.

상향식 공천 역시 당원 주권이 빠지면 레토릭에 불과하다. 

진정한 상향식 정당이라면 총선 후보보다 먼저 당협위원장을 당원이 직접 뽑아야 한다. 당협위원장 직선제는 반대하면서 총선 후보만 일반 국민 여론조사로 결정하자고 하면 현역 의원과 유명 정치인, 언론 노출이 많은 인물에게 유리해진다.

그것은 당원에게 권력을 돌려주는 제도가 아니라 기득권을 ‘국민 선택’으로 포장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

박근혜가 ‘신뢰’를 꺼낸 이유

바로 이 지점에서 박근혜가 꺼낸 ‘신뢰’가 세 가지 언어의 허점을 찌른다.

김무성은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앞장섰다가 탄핵에도 앞장섰다. 보수정권이 무너지고 당이 분열된 결과에 대해 어떤 책임을 졌는지 답해야 한다.

한동훈은 윤석열 정부의 법무부 장관이었고 윤석열에 의해 집권당 지도자로 올라섰다. 새로운 보수의 대표자를 자처하기에 앞서 자신이 참여한 정권의 성패에 어떤 공동책임을 졌는지 설명해야 한다.

조선일보도 보수정권의 탄생과 몰락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자신이 만든 여론과 정치적 결과에 대해서는 선출된 권력처럼 책임지지 않는다.

박근혜의 발언을 탄핵 심판의 법적 결론을 뒤집자는 주장으로 읽을 필요는 없다. 그것과 별개로 권력을 선택하고 움직인 사람들이 그 결과에 어떤 책임을 졌는지는 물을 수 있다.

신뢰는 말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공동체가 어려울 때 자리를 지키는 희생, 자신의 선택이 실패했을 때 먼저 책임지는 태도, 다른 사람에게 요구한 기준을 자신에게도 적용하는 일관성으로 증명된다.

중도는 민생으로 증명해야 한다. 분권은 국민에게 권력을 돌려줄 때 정당하다. 상향식 공천은 당원 주권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 조건이 빠지면 중도는 특정 세력의 복귀 명분이 되고, 분권은 국회와 언론의 권력 확대가 되며, 상향식 공천은 기득권을 가리는 포장지가 된다.

박근혜는 김무성도, 한동훈도, 조선일보도 거론하지 않았다. 다만 정당 안에 신의가 없으면 그 정당은 존립할 수 없다고 했다.

민주주의는 선택할 권리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자신이 한 선택의 결과를 감당할 책임이 있어야 한다. 제도가 아무리 민주적으로 보이더라도 희생과 책임이 없다면 권력투쟁의 포장에 불과하다.

박근혜를 다시 정치의 중앙으로 호출한 것은 과거에 대한 미련도, 친박의 부활도 아니었다. 

희생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으면서 다음 권력만 요구하는, 이름만 바꿔 돌아온 ‘배신의 정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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