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김민석 총리가 3월3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재경부의 중동전쟁 관련 비상국정운영 및 대응현황 보고를 청취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중동 전쟁 장기화 이후 이재명 대통령의 위기 대응 발언은 점점 더 강한 비상 언어로 이동하고 있다.
시장 안정과 공급망 관리에서 출발한 대통령의 메시지는 이제 비상대응체계, 전시 추경, 전시물자 수준의 관리, 긴급재정명령, 가짜정보 엄정 대응까지 확장됐다.
문제는 수위만이 아니다. “재고는 충분하다”는 말과 “긴급재정명령”이 같은 날 함께 나오고, 생활 불안을 다룬다면서 수사기관 대응까지 거론되는 순간 국민이 받는 신호는 안정이 아니라 비상이다.
위기 대응의 언어가 아니라 위기를 이용한 정치의 언어처럼 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 발언 흐름은 분명하다.
이 대통령은 3월 24일 국무회의에서 “중동전쟁의 확대·장기화”로 원유와 천연가스 수급 불안이 커지고 있다며 정부 차원의 비상대응체계를 선제적으로 가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한 대비와 전시 추경의 신속 편성도 함께 주문했다.
이어 3월 31일 국무회의에서는 종량제 봉투는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재고가 충분하다”고 하면서도, 필요하면 헌법이 정한 긴급재정명령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요소수·헬륨·알루미늄 등 핵심 원자재를 “전시물자에 준하는 수준”으로 엄격히 관리하라고 했고, 위기 대응 관련 허위·가짜 정보에 대해서는 수사기관의 엄정하고 신속한 대응을 주문했다.
며칠 사이 대통령의 위기 화법은 금융과 에너지를 넘어 생활물자와 통제의 영역까지 빠르게 넓어졌다.
물론 반론은 가능하다. 중동 전쟁이 길어지고 유가·환율·원자재 수급 불안이 동시에 겹친 상황에서 대통령이 선제 대응을 강조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기는 어렵다.
실제로 정부는 3월 24일 비상대응체계 선제 가동과 최악의 상황 대비를 지시했고, 전시 추경 편성 방향도 내놓았다. 이런 맥락에서 3월 31일의 긴급재정명령 언급 역시 당장 발동이 아니라 “필요하면 활용할 수 있다”는 경고성 발언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선제 대응 그 자체가 아니라, 선제 대응을 말하는 방식이다.
선제 대응이라면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은 충분한지, 어떤 경우 어떤 조치를 하겠다는 것인지, 국민은 무엇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지를 차분하게 설명하는 것이 먼저다.
그런데 이번 발언은 “재고는 충분하다”면서 “긴급재정명령”을 말했고, 생활물자 문제를 설명하면서 “가짜정보 엄정 대응”까지 함께 꺼냈다.
이 경우 국민이 받는 인상은 준비된 행정이 아니라 비상 권한의 호출에 가깝다. 선제 대응의 실질보다 비상 언어의 상징성이 더 크게 전달된 셈이다.
정치학은 이런 과정을 이미 설명해 왔다.
대표적인 것이 ‘안보화(securitization)’다. 어떤 사안을 원래의 행정·경제 문제로 다루지 않고 안보 위협의 언어로 재구성하는 순간, 평시라면 과도해 보일 예외적 조치도 쉽게 정당화된다는 설명이다.
또한 외부 위협이 커질수록 지도자 주변으로 여론이 일시 결집하는 이른바 ‘국기 결집 효과(rally-round-the-flag effect)’도 오래된 정치학 개념이다.
‘외부 위기를 어떻게 말하느냐’는 늘 정치적 효과를 낳는다. 시장 안정과 생활물자 관리의 문제를 전시와 긴급권의 언어로 끌어올리는 순간, 위기는 대응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통치의 자산이 된다.
이 지점에서 좌파 문재인 정권 시절 코로나 국면이 떠오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당시에도 감염병이라는 실제 위험은 존재했지만, 집합금지와 영업제한, 방역패스를 둘러싸고 과잉 대응 논란이 컸고, 헌법재판소와 법원 판단에서도 국가 조치의 한계가 쟁점이 됐다.
위기가 실재하더라도, 권력이 그 위기를 어떤 언어로 확대하고 어떤 예외 조치를 정당화하느냐는 별개의 문제라는 뜻이다.
지금 이재명의 화법 역시 바로 그 경계 위에 서 있다.
무엇보다 긴급재정명령은 가볍게 꺼낼 수 있는 표현이 아니다.
헌법 제76조는 내우·외환·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에서,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고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에 한해, 최소한으로 필요한 재정·경제상의 처분이나 법률의 효력을 가진 명령을 발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대통령은 그 처분이나 명령을 한 뒤 지체 없이 국회에 보고해 승인을 얻어야 한다.
국가기록원은 현행 긴급명령 규정이 제3공화국 헌법상의 긴급명령 규정과 거의 같은 뼈대를 갖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 표현이 생활물자 수급 논의와 함께 공개적으로 호출될 때 많은 국민이 군사정부 시절의 비상통치 어법을 떠올리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직접적인 제도 비교는 신중해야 한다. 지금이 곧 군사정부라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생활물자와 공급망 문제를 비상권한의 언어로 끌어올리고, 그와 동시에 정보 통제의 신호까지 보내는 방식은 분명 군사정부 시절을 연상시키는 통치 화법에 가깝다.
재고는 충분하다면서 긴급재정명령을 말하고, 불안을 잠재운다면서 수사기관을 앞세우는 화법은 민주정부의 설명 방식이라기보다 비상·통제·질서 유지의 어법으로 들린다.
그래서 국민은 “정부가 관리하고 있다”는 안도보다 “정부가 위기를 어디까지 정치화하려 하는가”라는 의심을 먼저 품게 된다.
결국 지금 필요한 것은 더 센 말이 아니라 더 정확한 설명이다.
선제 대응이 필요하다는 반론은 가능하다. 그러나 선제 대응의 이름으로 비상 권한의 언어를 앞세우는 순간, 대응은 준비가 아니라 정치로 읽히기 시작한다.
위기를 관리하는 지도자는 경보음을 절제한다. 위기를 정치에 활용하는 권력은 경보음을 반복한다.
지금 국민이 들어야 할 것은 비상의 언어가 아니라 신뢰의 언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