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각자 자기 석유를 확보하라”는 발언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다. 미국이 더 이상 세계 안보 비용을 대신 부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선언에 가깝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지돼 온 미국 중심의 국제 질서가 구조적 변화를 맞고 있다. 동맹국들은 그 변화의 비용을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국면에 들어섰다.
미국의 태도 변화는 우연이 아니다. 셰일 혁명 이후 미국은 에너지 자급 기반을 갖추었고, 중동 안정을 위해 막대한 비용을 투입할 이유가 줄어들었다.
과거에는 동맹의 안보를 미국이 대신 책임지는 구조였다면, 이제는 미국의 이익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 동맹에게 제공할 보호의 범위도 제한적이다. 영국과 프랑스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의 안보 우산이 자동적으로 제공되는 시대는 이미 끝나가고 있다.
이 상황에서 한국이 취할 선택은 분명하다. 결단을 주저하거나 피할 것이 아니라, 구조적 취약성을 줄이고 새로운 기회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정비해야 한다. 우선 그동안 불협화음의 원인을 돌아보고 미국과의 협력을 보다 실질적인 형태로 전환해야 한다.
해외 선박과 자국민 보호를 위한 해상안보 역량 강화
트럼프 대통령이 호르무즈 작전의 조기 종료를 선언하고, 미국이 중동 해역에서 사실상 손을 떼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 주도의 해협 안정화 작전이 사라진 상황이지만 해역의 위험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호르무즈 해협은 여전히 한국 원유·가스 수송의 핵심 요충지이며, 해상 불안정은 곧바로 우리 경제와 산업에 직결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우리 선박을 보호할 수 있는 해양 안보 역량을 강화하는 일이다.
인명 피해 없이 해상 통제력을 확보할 수 있는 무인(無人) 전력, 자율운항 기술, 원거리 감시·정찰 능력은 앞으로의 해양 안보에서 핵심 전력이 될 것이다.
우리 스스로 해양 안보를 위해 이러한 기술적 기반을 조기에 확보하고, 중동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북극항로 활용 △원전 풀 가동 △소형 모듈형 원자로(SMR) △수소 기반 에너지 전환 등은 장기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 전략이다.
공동의 이익을 기반으로 하는 현실적 동맹 재정비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한국의 안보 역량을 강화하고 미국과의 상생 구조를 다시 설계하라는 요구에 가깝다. 감정적 동맹이 아니라 공동의 이익을 기반으로 한 현실적 동맹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제 질서가 빠르게 재편되는 상황에서 한국은 스스로의 능력을 키우면서도 미국과의 협력을 더 강화해야 한다. 국가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은 즐겨야 한다.
지금의 환경은 우리에게 기회와 위험을 동시에 안겨준다. 미국과의 결속을 강화하면 안보와 경제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지만, 독자적 역량도 없이 미국을 앞설 수 없는 상황에서 전작권 전환을 비롯 미국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것은 외교·안보·경제 전반에서 불확실성만 키우는 꼴이 된다.
경제안보 차원의 에너지 구조의 다변화 정책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의 핵심 통로이자 한국 원유 수입의 대부분이 지나가는 전략적 생명선이다. 이 지역의 불안정은 국가 생존을 위협하는 구조적 리스크로, 실제로 중동 긴장만으로도 금융시장은 요동치고 원화 가치가 흔들리며 고물가·고환율·고금리의 압박이 동시에 나타났다.
이는 에너지·물류·부품·금융이 하나의 회로처럼 연결된 경제안보가 군사안보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미국의 셰일 가스전, LNG 터미널 등 에너지 인프라에 직접 투자해 공급망의 일부가 되는 방식은 단순한 구매 관계를 넘어선 전략적 결속을 의미한다. 이는 에너지 가격 변동에 대한 방어력을 높이고, 달러 중심 금융 체제에서 원화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국제 유가가 상승하더라도 미국 내 에너지 자산 가치가 함께 상승하는 구조를 만들면, 에너지 비용과 금융 불안이라는 이중 부담을 해소할 수 있다.
전쟁 양상의 변화에 맞는 입체적 안보 전략 강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란 전쟁은 저가 드론이 고가 무기를 무력화하고, 정밀타격·전자전·AI 기반 무기가 전쟁의 중심으로 이동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우리도 전장 인식 능력, 드론·AI 전력, 전자전·요격체계 등 새로운 전쟁 양상에 맞는 대비를 서둘러야 한다.
이는 단순한 군사력 보강이 아니라 국가 생존을 위한 구조적 전환이다.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국제 환경이 빠르게 변하는 만큼, 다양한 외교 채널을 활용해 위험을 분산하고 협상력을 높여야 한다.
군과 안보라인은 정치인이 아니다. 국가 생존을 판단하고 결행한 전략가여야 한다. 억제력과 전투준비태세를 확고히 유지하고, 정치적 계산과 영향에서 벗어난 전문적 판단을 해야 한다.
한미동맹은 정확한 정보와 일관된 전략으로 유지하고, 반국가적인 안보 정쟁과 군대 죽이기를 멈추고 지휘체계를 바로잡아야 한다.
군은 군답게 변화된 전쟁 양상에서 이길 수 있는 강군 육성에 정진하고, 안보라인은 안보 책사답게 국가의 안전보장을 확보하여 전쟁을 방지하는 방책을 강구해야 한다.
국민이 안보를 걱정하지 않는 날이 빨리 오길 염원한다.

◆ 박필규 위원
한미일보 편집위원
육군사관학교 40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