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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조우석] ②대통령병 환자 홍석현, 탐욕의 30년을 아세요?
  • 조우석 평론가
  • 등록 2026-07-18 18:4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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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J-노무현-이재명과 유착...그통에 대통령 꿈 헛바람
  • 박근혜 등 우파 대통령은 탄핵 공작의 이중성
  • “아버지처럼 출세하자” 콤플렉스...패가망신 자초했다

홍석현(왼쪽)과 김대중. [사진=연합뉴스]

언론계의 비하인드 스토리 하나가 흥미롭다. 복수의 제보자에 따르면, 중앙일보-jtbc의 오너 홍석현(77)은 지난해 봄 당시 대선 후보이던 이재명을 찾아갔다. 언론사 오너가 대권을 잡을 사람에게 대놓고 줄을 댄 것이다. 유력한 대권주자인 이재명에게 “당신의 약점을 보완해드리겠다”며 홍석현은 감언이설과 함께 설득을 했다.


세상이 다 알 듯 이재명의 약점은 대미 관계 취약점인데, 홍석현 자기의 네트워크와 정보를 동원해서 메꿔주겠노라고 제안한 것이다. 사람도 천거했다. 추천 인사는 직후 이재명 정부 초대 홍보수석이 된 중앙일보 기자 출신 이규연, 국가안보실장에 발탁된 친미파 위성락 등을 포함한다. 둘 이외에 이재명 정부에 바로 입각했던 별도의 인물도 있는데, 물론 홍석현 추천이다.


이 일화가 무얼 뜻하는가? 멀쩡한 유력 언론사 오너가 신문방송 경영의 뒷전에서 이렇듯 은밀하고 정략적인 방식으로 움직였다는 점이다. 그게 홍석현이다. 그는 30년 넘도록 ‘대통령의 꿈’을 향해 움직여왔던 사람이다. 그러던 그가 왜 이재명까지 접촉했을까? 70대 중후반이란 나이도 있고 해서 대권에서 멀어지자 킹메이커로 변신한 채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안간힘이다.


그렇다. 우리 언론 역사에서 홍석현처럼 신문방송 사주(社主)가 저렇게 비정상적인 처신을 해온 사례는 드물다. 아니, 없다. 언론사 오너 중 언론계-정관계를 오간 사람으론 예전 한국일보 사주 장기영 정도가 꼽히지만, 홍석현은 그와 성격이 전혀 달랐다. 중앙일보 사장에 오른 직후부터 자가발전 속에 자신의 위상을 대권 도전의 교두보로 삼아 끈질기게 움직여온 것이다.


언론사 경영은 표면뿐이었다. 최근 중앙일보-jtbc를 비롯한 중앙그룹이 최악의 부실 경영 속에 오늘날 공중분해 위기를 맞은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언론은 속성상 권력과 불가근불가원의 관계다. 권력과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는 게 언론사주는 물론 기자의 직업윤리인데, 홍석현의 사전에는 그런 게 전혀 없었다고 보시면 된다.


외려 그는 불나방처럼 권력을 향해 먼저 달려들었다. 차근히 살펴보면, 모든 게 상식을 훌쩍 벗어나는데, 그게 홍석현의 진면목이다. 시작은 그의 매형인 삼성그룹 회장 이건희가 1994년 그를 중앙일보 사장에 임명한 뒤다. 이후 그는 대통령의 꿈을 꾸기 시작하는데 구체적으로 언제쯤일까? 사람들은 그게 2004년 초 노무현과 만난 직후라고 말한다.


당시 홍석현은 노무현 취임 1년 대담을 위해 정치부 기자를 대동한 채 청와대를 찾아갔다. 그때 조선일보와 대립각을 세우던 노무현으로부터 “중앙일보 홍석현은 말이 통하는 사람”이란 칭찬을 들었다. 좌파 권력과 보수언론 사주 사이 기묘한 야합의 시작이다. 어쨌거나 바로 그 뒤에 홍석현은 “노무현 다음은 나”란 헛꿈을 키우기 시작한다는 게 지금까지의 얘기다.


하지만 그런 판단은 절반만 맞는다. 그가 일찌감치 김대중으로부터 통일 과외를 받았던 사실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2000년 가을, 홍석현이 자신 오점인 거액의 세금 탈루 문제로 복역하고 난 뒤의 상황이었다. 당시 이희호와 함께 김대중은 막 석방된 홍석현을 위로한답시고 청와대로 불러 밥 먹여주며 유화책을 폈다.


헛바람이 든 젊은 언론 사주 한 명을 좌파 김대중이 가지고 놀았던 것이다. 당시 김대중은 햇볕정책을 주입시키기도 했는데, 그 전후 홍석현의 대북관은 결정적으로 불그스럼해졌다. 분명한 건 대권 욕심의 싻을 가지고 있던 홍석현이 그때 단단히 멍이 들었다는 점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 대권의 꿈이 구체화된 건 물론 노무현으로부터 주미대사직을 받았던 이후다. 본래 그는 ‘아버지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으로, 야심 많던 홍석현은 그 자리를 대권 꿈의 빅 찬스로 판단한 것이다. ‘아버지 콤플렉스’란 뭘까? 홍석현은 언론사주를 넘어 이승만 정부 시절 법무장관을 역임했던 아버지 홍진기보다 더 높이 날길 원했던 것이다.


실제로 주미대사직을 받은 직후 ‘이카루스 홍석현’의 꿈은 걷잡을 수 없이 부풀어 올랐다. 주미대사를 발판 삼아 2006년 유엔사무총장 선거에 출마한다는 복안까지 있었다. 구체적으로 임기 5년을 연임할 경우 10년을 꽉 채워 글로벌한 명성으로 확보하고, 그걸 밑천 삼아 금의환향해 대권가도를 향해 달린다는 찬란한 그림이었다.


단 홍석현의 몰락은 그때 시작됐다. 2005년 삼성X파일 사건이 터지며 모든 게 엉망이 된 것이다. 명색이 언론사주가 정치자금을 전달했다는 추문은 지금도 그의 최대 흑역사다. 희멀건한 신사로 보이던 그가 시정잡배처럼 돈 심부름이나 하고 다녔고, 배달 사고까지 냈다는 게 확인되면서 명성은 곤두박질쳤다. 그럼 이후 대권 꿈은 사그라들었는가?


그럴 리 없다. 박근혜 대통령 말기 그가 수상한 태블릿 PC 하나 주어와 그걸 흔들어대며 ‘탄핵 협박’에 몰두했던 것을 우린 기억한다. 놀랍게도 그건 1타2매였다. 그참에 삼성그룹 부회장 이재용까지 날려버렸으니, 그로선 중앙일보 접수에 이어 삼성 경영권을 마저 빼앗을 호기였다. 그게 끝내 외삼촌 홍석현과 조카 이재용 사이의 원한으로 번졌고, 중앙그룹 몰락의 또 다른 계기가 된다.


사정이 이런데도 뭘 모르는 사람들은 홍석현이야말로 ‘언론계의 계몽군주’라고 떠벌인다. 주로 좌빨 쪽에서 나오는 동정표에 불과하다. 그러나 지금 세상 민심은 전혀 다르다. 중앙그룹 공중분해는 “국민의 축하를 받으며 난 부도”라는 말까지 나돌 정도다. 자유우파에선 사필귀정이라며 박수를 친다.


분명한 것은 홍석현의 언론사 경영이란 게 ‘악업(惡業) 30년’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중앙그룹 공중분해 위기는 탐욕의 화신 홍석현이 자초한 재난에 다름 아니다. 핵심은 따로 있다. 자본잠식을 숨긴 채 사기로 발행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7900억원(중앙그룹 사태 피해 개인 채권자연대의 추정액) 규모의 회사채가 관건이다. 이게 크다.


발행하면 결코 안 되었을 회사채를 발행한 건 중대 범죄에 속하는데, 홍석현-홍정도 부자는 지금 그 혐의를 받고 있다. 금감원에서 그 점을 들여다보고 있기도 한데, 그래서 다음 홍석현-홍정도 관련 칼럼 3회의 제목은 “대국민 사기극 주범 홍석현-홍정도, 감방 가자”다. 관심 바란다.


 조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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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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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imdh08212026-07-19 04:45:46

    조우석 평론가님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허우대 멀쩡한 양반이 참 기가 찹니다

    다음 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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