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정의를 실천하는 교수 모임(자교모)’은 지난 17일 오후 4시, 서울 강남구 도곡동 총지사 통리원 2층에서 ‘제30차 자교모 세미나’를 개최했다. [사진=임요희 기자]
‘자유와 정의를 실천하는 교수 모임(자교모)’은 제헌절인 17일 오후 4시, 서울 강남구 도곡동 총지사 통리원 2층에서 ‘제30차 자교모 세미나’를 개최했다.
‘21세기 한국인의 세계관과 그람시’라는 주제 아래 진행된 이번 세미나는, 정치권력 변동 이후에도 쉽게 변하지 않는 사회적 관성과 그 중심에 있는 시민사회의 역할을 깊이 있게 조명했다.
자유주의작가회의 소속 정광제 작가가 발제자로 나섰으며, 고려대학교 홍후조 교수의 사회로, 울산대학교 이제봉 교수와 김규나 작가가 토론자로 참여해 열띤 논의를 펼쳤다.
그람시의 ‘헤게모니’와 ‘진지전’으로 본 현대 사회
‘자유주의자의 그람시 읽기’ 저자인 정광제 작가는 대한민국이 2017년, 2022년, 2025년 대선을 거치며 여러 차례 정권 교체를 겪었음에도 대학 강단, 교과서 서술, 언론 매체의 개념과 표현 등 사회 전반의 가치 체계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자유주의작가회의 소속 정광제 작가가 발제자로 나섰다. [사진=임요희 기자]
정 작가는 “선거는 단기간에 정부를 교체할 수 있지만 교육, 언론, 문화, 종교 등 사회를 움직이는 시민조직은 훨씬 긴 시간 속에서 움직인다”며, 정치적 승패와 사회적 영향력이 항상 일치하지 않는 현상을 짚어냈다.
정 작가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장 집요하게 탐구한 사상가로 안토니오 그람시를 꼽았다. 그람시가 제시한 ‘헤게모니(Hegemony)’ 개념을 인용하며, 국가를 유지하는 힘은 군대나 경찰 같은 물리적 강제력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 다수가 특별한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당연한 생각, 즉 ‘상식’과 ‘자발적 동의’에서 나온다고 설명했다.
특히 서유럽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실패한 원인을 ‘두터운 시민사회의 존재’에서 찾은 그람시의 분석을 바탕으로, 현대 사회의 권력 경쟁은 국회의사당뿐만 아니라 학교, 대학, 언론, 출판, 문화 등 시민사회 전반에서 오랜 기간 이루어지는 ‘진지전(War of Position)’의 성격을 띤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민주화 이후의 시민사회 장기 경쟁
이어 정 작가는 그람시의 이론을 1987년 민주화 이후의 대한민국 현대사에 대입해 분석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1987년 이후 평화로운 정권 교체가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도 좌파 권력집단은 △대학 내 학문적 해석의 축적 △전교조 등을 통한 교육 현장의 변화 △참여연대·경실련 등 시민단체의 의제 설정 △역사교과서 서술을 둘러싼 기억의 우선순위 경쟁 △‘쉬리’ ‘변호인’ ‘1987’ 등 문화콘텐츠를 통한 가치관 확산이 촘촘하게 이어져 왔음을 설명했다.
그는 “보수 정부가 집권하더라도 대학이 쉽게 바뀌지 않는 현상은 시민사회 내부에서 오랜 기간 축적된 진지전의 결과”라며, “정치는 표면적인 결과를 제도화할 뿐,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과 어휘를 만드는 진짜 힘은 시민사회에 있다”고 분석했다.
디지털 시대, 미래 세대의 상식을 향한 질문
결론적으로 정 작가는 오늘날 SNS, 영상 플랫폼, 검색 알고리즘 등 미디어 환경이 급격하게 변했어도 ‘사람들이 사고방식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 사회를 움직인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며 “정권이 어떻게 바뀌는가보다 사회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미래 세대가 어떤 상식을 배우며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시민사회 내부에서 더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왼쪽부터 박상윤 대한민국교원조합(대한교조) 사무총장, 이제봉 울산대 교수, 김규나 작가. [사진=임요희 기자]
이어진 토론에서 이제봉 교수는 우파 집단의 문제점으로 “이벤트 위주”의 행동 양식을 꼽았다. 그는 “정치 권력을 잡는 게 중요하다. 우파는 정치 권력이 없다. 집회 참여 같은 이벤트만 무성하다. 우파가 헤게모니를 가져가려면 먼저 대학에서 교수들이 조직화되야 한다. 내가 조직화를 강조하면 다들 ‘그럴 시간 어딨냐’며 태극기 들고 집회 나가기 바쁘다”고 꼬집었다.
한편 김규나 작가는 “자유주의자에게 조직화를 강조하는 것 자체가 자유주의에 배치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방청석의 질의도 활발하게 이어졌다. 박상윤 대한민국교원조합(대한교조) 사무총장은 “대한민국 역사를 담은 학교 교과서가 축소와 의도적 외면으로 가득 찼다”며 “특히 대한민국의 성장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인물들에 대한 왜곡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우파 교사들과 학부모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보도자료를 내도 언론에서 보도를 안 해준다. 결국 모두가 나서 민원을 넣는 등 우리가 움직이는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이번 세미나는 대한민국의 장기적인 세계관과 상식이 형성되는 구조를 그람시라는 렌즈를 통해 신선하게 분석했다는 점에서 참석자들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세미나를 마친 후 기념촬영 [사진=임요희 기자]
임요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