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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신 칼럼] 질문을 견디지 못하는 진실은 위험하다
  • 임명신 前 스카이데일리 국제 부국장
  • 등록 2026-04-06 19:2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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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의 레토릭을 법정에 세울 것인가
  • 현대판 ‘문자옥’의 그림자: 중국의 사례
  • 5·18이라는 성역과 ‘의도된 불경함’의 수사

사문난적으로 몰린 글과 책을 불태우고 문인들을 투옥·유배·처형한 문자옥(文字獄)의 횟수·강도 면에서 중국을 앞설 나라가 있을까.  

4월2일 오전 인천지법 부천지원에서 김규나 작가의 첫 공판이 열렸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직후 SNS에 올린 소감과 표현 때문에 5·18 특별법 위반 혐의로 벌금 1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받자, 김 작가가 이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청구한 것이다. 

 

현행 특별법 제8조는 5·18 관련 허위사실 유포를 형사처벌하지만, 예술·학문, 연구·학설, 시사사건이나 역사의 진행 과정에 관한 보도 등은 예외로 둔다. 바로 그 경계선, 어디까지가 처벌의 범위인가가 이번 법정 투쟁의 핵심이다.

 

법정은 김규나의 무엇을 심판하는가

 

김 작가의 표현이 ‘점잖았다’고 할 수 없으나, 그 점만 문제 삼는다면 사안의 진짜 핵심을 놓친다. 왜 하필 그런 냉소적이며 저속한 어조를 구사했는가에 더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우발적 감정 폭발이라기보다 지나치게 성역화된 5.18 인식이 문학적·도덕적 권위를 독점하는 현실에 대한 ‘의도적 불경의 수사(修辭)’로 읽을 수 있다. 얌전한 문장을 통해선 결코 전달되지 못할 문제의식을, 일부러 예의의 외피를 깨뜨린 방식으로 투척한 셈이다. 

 

요컨대 표현의 저속함 그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일 수 있다는 뜻이다. 성역이 된 기억이란 예의 바른 이견쯤은 쉽사리 흡수해 버린다. ‘유감’ ‘재검토 필요’ ‘다른 해석도 가능’ 정도의 문장은 곧바로 ‘정중한 소음’으로 처리된다. 불경스러운, 무례한 문장이어야 그 성역의 방어기제가 단번에 드러난다.

 

큰 논란을 빚었던 T. 하디나 D. H. 로런스의 문제작들이 문학사적 위상을 얻게 된 것은, 금기를 건드린 주제와 문체가 당대의 위선적 도덕주의를 찌르는 사회비판의 형식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로런스의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한때 외설 시비와 재판을 겪었지만, 표현의 자유와 문학적 가치를 둘러싼 상징적 논란을 남겼다. 우리나라 지식계의 한 경향을 대표하며 범민주당 쪽 좌장으로 군림해 온 백낙청의 하버드대 박사학위(1972) 논문이 D. H. 로런스 연구였다는 것도 시사적이다.

 

5.18을 하나의 문장과 도식, 하나의 도덕 교과서로 봉인하는 것이 온당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반독재 투쟁의 열기가 왜 그토록 끔찍한 비극으로 번졌나 더 살펴야 되는 것 아닌가. 

 

시민 저항의 역사인 동시에 무장화와 혼란, 유언비어와 공포, 체제 위기 등이 얽힌 복합적 사건이었기에 연구와 토론, 반박과 재해석의 대상이어야 한다. 위대한 사건일수록 더 많이, 더 다양한 질문을 견딘다. 그렇지 못한 기억은 진실이 아니라 교리가 된다.

 

정중한 소음과 무례한 진심 사이에서

 

유럽에도 이른바 ‘기억법’이 존재한다. 프랑스에선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반인도적 범죄를 부정 내지 축소하는 언행을 처벌하는 법이 1990년 도입됐다. 

 

리옹대 문학 교수 로베르 포리송(1929~2018)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 허구라며 가스실의 존재를 부인한 일로 1991년 교수직에서 물러났다. 

 

2018년 폴란드는 자국 정부·국민에게도 나치 범죄의 책임이 있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행위를 처벌할 법을 도입했다가 국제적 비판에 직면해, 같은 해 형사처벌 조항을 철회했다. 

 

르완다 역시 집단학살 부정 및 ‘제노사이드 이데올로기’를 둘러싼 법과 제도를 운용해 왔지만, 인권단체들은 그것이 사실상 비판적 언론과 반대 의견 탄압으로 이어질 위험성을 경고해 왔다. 더구나 5.18은 이들 사례에 비해 한층 해석이 갈릴 만한 다층적·다면적 사건이다.

 

사문난적으로 몰린 글과 책을 불태우고 문인들을 투옥·유배·처형한 문자옥(文字獄)의 횟수·강도 면에서 중국을 앞설 나라가 있을까. 

 

현대에 들어서도 본질은 그대로다. 훗날 ‘10년 동란’으로 불리게 된 문화혁명의 초기 도화선 가운데 하나가, 명나라 청백리를 그린 역사극 ‘해서파관(海瑞罷官)’을 둘러싼 비판, 곧 일종의 필화사건이었다. 

 

‘08헌장’의 핵심 작성자이자 201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류샤오보(1955~2017)는 결국 국가전복 선동 혐의로 11년형을 선고받고 구금 상태에서 숨졌다. PEN America에 따르면 중국은 2024년 작가와 공적 필자 118명을 수감해 이 방면의 세계기록을 세운 바 있다. 

 

문학이 죽은 자리엔 선전문만 남아

 

권력이 어떤 기억에 특정 문장만을 허용하기로 하면, 가장 먼저 죽는 게 문학이고 그 다음이 역사학일 터. 남는 것은 선전문과 자기검열이다. 

 

사문난적으로 몰린 글과 책을 불태우고 문인들을 투옥·유배·처형한 문자옥(文字獄)의 횟수·강도 면에서 중국을 앞설 나라가 있을까.  

오늘날 중국에서 궁중암투나 무협 판타지가 우세하며, 진지한 서사일수록 SF 같은 우회 장르가 두드러져 보이는 현실 또한 그런 맥락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우리에겐 가까운 반면교사다.

 

따라서 김규나 사태에서 우리는 이렇게 질문해야 한다. 불쾌한 과장된 표현을 자유민주국가는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까. 자유란 고품격 문장만 보호하고자 존재하는 게 아니다. 

 

무례하고 도발적인, 심지어 악취미적인 문장조차 직접적 폭력 선동이 아닌 한 공론장에서 반박되고 비판받을 권리, 또는 그것의 ‘역설적 진의’를 옹호받을 여지가 필요하다. ‘그래도 김규나의 해당 SNS 문장은 너무했다’고 여긴다면 그 또한 자유다. 

 

다만 공권력에 의한 처벌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비판이 ‘열린사회의 저력’이면 처벌은 ‘금기의 협박’이다. 부정확한 말, 거친 말, 듣기 싫은 말까지 공론장으로 끌어내 더 정확한 사실과 더 나은 해석으로 압도하는 것이야말로 자유민주 사회의 품격이다. 

 

5·18의 존엄은 법조문이 아니라 팩트체크를 거친 판단 위에서 빛나야 한다. 성역화한 역사는 잠시 위엄 있어 보일지언정, 마침내 자유를 두려워하는 권력의 역사로 남기 마련이다.

 




◆ 임명신 박사 


중문학박사, 동북아 연구자

前 스카이데일리 국제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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