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인한 ‘개표소 봉쇄’가 계속되고 있는 잠실민주화운동 현장.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출입문 앞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자유 사회의 정치적 힘은 소수 엘리트의 계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시민들이 일반적인 법질서 아래에서 자발적으로 결사하고 협력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따라서 진정한 빅텐트는 위에서 설계된 거대한 조직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형성되는 자발적 협력의 네트워크(연합)이며, 이러한 점에서 엘리트 중심의 톱다운 방식과 본질적으로 구별된다.”
하이에크의 관점에서 볼 때, 김병준 교수 글의 핵심은 단순히 여러 정당과 시민단체를 하나로 묶자는 엘리트주의적 제안이 아니라, 사회 변화를 실현하는 방식에 관한 문제이다.
그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 국민의힘,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여러 정치세력과 수많은 시민단체가 자발적으로 협력하는 '빅텐트(Big Tent)'를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빅텐트는 사회를 소수의 엘리트가 위에서 설계하고 지휘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개인과 단체가 공동의 목표(또는 공동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결사하고 협력하는 과정 자체가 질서를 만들어 낸다는 게 핵심이다.
따라서 이때 만들어지는 질서는 하이에크가 말한 자생적 질서(spontaneous order)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하는 흥미로운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공동의 목표(common goal)를 위한 자발적 협력 자체는 하이에크가 말하는 자생적 질서(spontaneous order cosmos)가 아니다. 그것은 원칙적으로 조직(association, organization, taxis)이다. 다만 그러한 조직이 존재할 수 있는 배경 질서는 자생적 질서일 수 있다.
자생적 질서는 공동의 목표가 없고 구성원들은 각자의 목적을 가진다. 그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은 공동의 목적이 아니라 일반적 행위 규칙이다. 공동의 행동 규칙과 공동의 목표는 성격이 다르다.
예를 들면 시장의 소비자, 생산자, 노동자, 투자자는 모두 제각각 자기 목적을 추구한다. 이들에게는 공동의 노력을 통해 달성(해야)할 목표, 즉 시장 전체의 목표는 없다.
시장에는 그 대신에 공동으로 지킬 행동 규칙, 즉 사유재산 및 계약과 관련된 일반규칙, 사기금지, 책임 같은 일반규칙만 있다. 시장이 조직의 배경 질서(cosmos)인 이유다.
반대로, 정당, 기업, 교회, 군대, 시민단체 등은 모두 공동목표를 위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선거제도 개혁, 감세, 재선거, 정권교체 등 이런 목표가 생기면 이미 조직(taxis) 자체가 집회다.
하이에크는 이것을 결코 부정적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자유사회에는 수천 개의 집회가 존재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들은 자생적 질서가 아니라 조직이다.
그런데 이때 우리가 주지해야 할 점은 자발적이라고 해서 자생적 질서는 아니라는 것이다. 자발적인 것과 자생적인 것은 서로 다르다. 예를 들어 친구 10명이 자발적으로 함께 등산을 간다고 하자. 혹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12시에 점심식사를 함께하기로 한다고 하자, 모두가 매우 자발적으로 말이다. 그러나 공동 목표가 있으므로 그건 조직이다.
반대로 어느 식당에 사람들이 함께 자발적으로 식사하기로 한다는 공동의 목적이 없다고 해도 그들은 결과적으로 식사를 함께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의 함께하는 식사는 공동의 목적이라고 볼 수 없다. 이같이 시장은 누구도 시장 전체를 위해 행동하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자생적 질서인 이유다.
그렇다면 올림픽공원 집회는 매우 흥미로운 사례다. 김 교수의 글에서 읽을 수 있듯이 “당일투표일, 잠실 일대 투표소에서 불거져 나온 투표지 부족 사태”라는 공동의 문제의식은 “특정 리더 없이도 자연발생적으로 광장에 나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투표 수개표’를 외치는 결과로 이어졌다. 부정선거, 재선거, 당일투표, 수개표라는 공동목표를 정하고 공동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였다면 그 집회 자체는 조직(taxis이다.
이런 자율 집회가 가능했던 배경은 집회의 자유,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 법치와 일반규칙이다. 이것들은 자생적으로 진화한 자유질서다. 즉 집회는 조직의 배경 질서(cosmos) 안에서 존재한다. 이 둘을 혼동하면 안 된다.
조직의 배경 질서(cosmos)는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 일반규칙이다. 그 위에서 형성되는 조직(taxis)이 올림픽 공원 집회다. 그리고 공동의 목표를 위한 조직 내부의 운영은 자발적 참여와 자유로운 탈퇴, 내부 토론과 협력 등에 의해 이루어진다.
빅텐트(Big Tent) 역시 공동 목표가 있다. 따라서 빅텐트 자체는 조직(organization)이다. 하지만 빅텐트는 국가나 또는 어느 한 정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시민단체 정당 개인이 자유롭게 연합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자유 사회에서 형성된 자발적 조직(voluntary association)이다.
하이에크는 이런 조직을 결코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이 조직을 자생적 질서(spontaneous order)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더 정확한 표현은 자생적 질서 속에서, 자유로운 개인과 단체들이 일반적 행위 규칙 아래 자발적으로 형성한 조직이다.
빅텐트는 모든 의사결정을 소수의 지도부가 독점하고, 참가자들에게 획일적인 행동을 강요하며, 중앙에서 전략을 설계하여 일방적으로 집행하는 방식이라면 이는 하이에크가 비판한 사회주의적 조직의 성격을 띠게 된다. 이러한 방식은 분산된 지식을 활용하기 어렵고, 지도부의 오류가 전체 조직의 실패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따라서 목적론적으로만 본다면 빅텐트라는 게 동일한 성격의 조직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하이에크적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빅텐트가 내부적으로 어떻게 운영되는가이다.
김 교수는 빅텐트의 운영을 다양한 개인과 단체의 자발적 참여, 자유로운 토론, 경쟁적 의견 형성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는 엘리트가 위에서 설계하는 톱다운(Top-Down) 방식과 구별되는 바텀업(Bottom-Up) 방법으로 운영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엘리트의 톱다운 방식과는 달리 바텀업 방식은 개인들 시민단체 그리고 정당들이 분산된 지식의 자유로운 이용을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빅텐트는 하나의 거대한 지휘조직이라기보다 자유로운 결사체들의 연합으로 이해될 수 있다.
개인들은 물론 각각의 정당과 시민단체는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공동의 목표를 위해 협력하고, 필요에 따라 새로운 참여자가 자유롭게 들어오거나 나갈 수 있다.
하이에크는 자유사회 전체를 ‘조직들의 질서(an order of organizations)’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즉 자유사회는 하나의 거대한 조직이 아니다.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진 수많은 조직이 공통의 목표가 아닌 공통의 일반규칙 아래 공존하고 경쟁하는 질서다.
이 점에서 하이에크의 자생적 질서는 조직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들이 자유롭게 생성·변화·적응·소멸할 수 있도록 하는 상위질서(meta-order)라고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이것이 하이에크의 cosmos와 taxis를 가장 엄밀하게 연결하는 해석이다.
결국, 하이에크의 핵심 메시지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자유 사회의 정치적 힘은 소수 엘리트의 계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시민들이 일반적인 법질서 아래에서 자발적으로 결사하고 협력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따라서 진정한 빅텐트는 위에서 설계된 거대한 조직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형성되는 자발적 협력의 네트워크(연합)이며, 이러한 점에서 엘리트 중심의 톱다운 방식과 본질적으로 구별된다.
민경국 강원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