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케이 신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촉발된 이른바 ‘검찰 개혁’이 한국 형사법 체계를 붕괴시키고, 국민을 ‘장윤기 사건’ 같은 범죄 위협에 무방비로 노출시켰다.” [사진=연합뉴스]
이미 흙으로 돌아간 죽은 자의 허물을 들추어내고 활자로 비판하는 일은 몹시도 께름칙하고 마음이 무거워지는 작업이다. 그것은 망자(亡者)에 대한 보편적인 예의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산 자들끼리 치고받는 진흙탕 싸움에 굳이 말 없는 자의 백골까지 끌어들여야 하는가 하는 근원적인 회의감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덤 속의 이름이 이기적인 위정자들의 거대한 방패가 되고, 종국에는 살아 숨 쉬는 평범한 서민들의 생명줄을 끊어내는 도끼자루로 쓰이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방인의 렌즈에 비친 대한민국 사법의 비극
나는 이 서글프고 불편한 감정을 억누르고서라도, 기어이 그 무덤의 비석에 새겨진 조작된 신화를 건조하게 해체해야만 하겠다.
하물며 한국 정치에 비교적 중립적일 수밖에 없는 낯선 이방인의 렌즈를 통해서 봐도 보완수사권 폐지의 근원적인 서막이 ‘그’ 때문이라면 더더욱 제대로 한 번은 다뤄야 맞는 듯하다.
오늘 일본 닛케이 신문이 ‘대한민국의 검찰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 사태를 다루며 내놓은 진단은, 작금의 사법 파괴 공작이 누구의 이름에서 시작되어 어떤 참혹한 괴물을 낳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촉발된 이른바 ‘검찰 개혁’이 한국 형사법 체계를 붕괴시키고, 국민을 ‘장윤기 사건’ 같은 범죄 위협에 무방비로 노출시켰다.”
외신의 시각조차 이토록 명징하다. 거대 여당은 ‘노무현의 죽음’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다. 검찰의 강압적 수사 탓에 아무 죄 없는 억울한 성자가 희생당했다는 무결점의 순교자 프레임말이다. 과연 그는 검찰의 칼날에 억울하게 쓰러진 순백의 제물이었는가.
정치적 수사를 배제하면, 노무현 일가의 뇌물 수수 사건은 국가 원수의 도덕성이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지저분한 흔적의 연속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사전 인지 여부는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수사로 밝혀진 내용은 이렇다.
그의 목을 조른 건 같은 진영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가족들은 박연차 회장에게 아이들의 미국 집을 살 돈이 필요하다며 수백만 달러를 요구했다. 청와대 경내에서 돈가방이 오가고, 외교 행랑과 환치기라는 시중의 범죄 조직에서나 쓸 법한 더러운 수법들이 동원되어 불법 자금이 국경을 넘나들었다.
“도덕성 하나로 버텨온 정권”을 자부하던 좌파 진영의 명분은 그 낯 뜨거운 욕망 앞에서 완전히 박살 났다.
이 거대한 흠결이 터져 나오자, 벼랑 끝에 선 그를 향해 가장 먼저 차가운 돌을 던지고 손절한 것은 다름 아닌 그가 몸담았던 ‘좌파 진영’이었다. 최측근 안희정은 스스로를 ‘폐족(廢族)’이라 선언하며 숨어버렸고, 송영길, 추미애, 김민석 등은 앞장서서 그를 추상같이 비난하며 십자포화를 퍼붓기 바빴다.
심지어 변호인이었던 문재인마저 범죄 사실에 대한 기본적인 방어 의견서조차 제대로 제출하지 않아 수사팀이 당황했을 정도로, 당시 노무현은 철저히 고립무원의 섬에 갇혀 있었다.
등을 돌린 동지들 사이에서 그를 기어이 절벽 너머로 떼밀어 버린 최종 결정타는 소위 진보를 자처하던 극좌 언론들이었다. 그들은 노무현이 살아서 진실을 마주하다 좌파의 가치마저 동반 사망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펜대로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한겨레는 “마지막 승부수”를 촉구했고, 미디어오늘은 아예 “당신이 죽어야 이 땅의 민주주의와 사회 정의가 산다”며 노골적으로 죽음을 압박했다. 자존심 강한 승부사였던 노무현을 극단적 선택이라는 외통수로 몰아간 진짜 사신(死神)은 검찰이 아니었다. 도덕적 파산을 덮기 위해 그를 희생양으로 삼으려 했던 어제의 동지들과 진영 언론의 잔혹한 심리적 린치였다.
그러나 그가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진 직후, 소름 끼치는 반전이 일어났다.
끝나지 않은 ‘놈현 관 장사’
그에게 침을 뱉고 돌을 던졌던 자들이, 죽음의 충격파를 이용해 즉각 그를 ‘억울한 성자’로 둔갑시키고 모든 책임을 검찰에 뒤집어씌우며 권력의 무대로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죽은 자의 백골을 딛고 기사회생한 이 섬뜩한 정치 공학을 두고, 훗날 한겨레 신문마저 칼럼에서 ‘놈현 관 장사’라며 혀를 내둘렀을 정도다.
십수 년이 지난 지금, 이 비열한 ‘관 장사’로 연명해 온 시체 도굴꾼들은 또다시 그 죽음을 핑계 삼아 자신들의 꿀단지를 지킬 거대한 방탄복을 완성했다. 억울한 죽음을 반복하지 않겠다며 기어이 검찰의 보완수사권마저 박탈해, 국가의 사법 방어막을 완전히 불태워버린 것이다.
나는 깊은 탄식 속에 뼈아프게 사유한다. 노무현은 결코 극단적 선택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살아서 그 죗값과 사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버텨 냈어야 했다. 그의 무책임한 죽음은 자신을 버렸던 기회주의자들에게 완벽한 면죄부와 흉기를 쥐여주었고, 이 나라의 현대 정치사를 돌이킬 수 없는 왜곡과 진영주의자들의 한풀이 판으로 밀어 넣었다.
최소한의 인간적인 매력만큼은 그 누구도 부정하기 힘든 그가, 억울한 서민들이 법의 사각지대에서 피눈물을 흘리게 만든 원흉으로 자신의 이름이 끝없이 부관참시 되는 이 현실을 볼 수 있다면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살아있는 권력의 방탄을 위해 죽은 자의 무덤을 파헤쳐 국가를 파괴하는 이 잔혹한 강령술을, 역사는 몹시 서늘한 야만의 시대로 기록할 것이다.

◆ 박주현 작가
작곡가, 음악감독, 칼럼니스트, 수필가. 페이스북에서 정치, 시사,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해 수많은 이의 공감을 얻고 있다. 에세이집 ‘폭풍의 바다를 건너다’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