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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공화정으로 보는 대한민국: 松山] ⑥다수결은 언제 폭정이 되는가
  • 松山 작가
  • 등록 2026-08-03 20:3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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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폰네소스 전쟁 중 아르기누사에 전투(기원전 406년)를 묘사한 그림. [그림=세계사백과사전]

민주주의를 설명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원리는 다수결이다. 서로 다른 의견이 충돌할 때 모두가 만족하는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이 지지한 의견을 공동체의 결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수결은 피를 흘리지 않고 권력을 교체하고, 끝없는 논쟁을 실제 결정으로 바꾸는 유용한 절차이다. 그러나 다수결로 결정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그 결정이 언제나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다수는 사람의 수를 말할 뿐 진리와 정의를 보증하는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법 아래의 민주정 vs 법 위의 참주정

다수결과 민주주의를 같은 것으로 생각하면 문제가 생긴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권력의 주인이라는 원리이고, 다수결은 여러 의견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방법이다. 다수는 결정을 내릴 권한을 갖지만, 무엇이든 할 권한까지 갖는 것은 아니다. 

열 사람이 한 사람의 재산을 빼앗기로 표결했다고 해서 그 약탈이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백 명이 한 사람의 입을 막기로 결정했다고 해서 그것이 민주주의가 되는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의 가장 어려운 문제는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국민이 가진 권력도 어떻게 제한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뒤따른다.

고대 아테네 사람들도 이 위험을 알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 제4권에서 법이 지배하는 민주정과 민중의 결의가 법을 대신하는 민주정을 구별하였다. 법이 최고 권위를 갖는 민주정에서는 선동가가 중심에 서기 어렵지만, 법이 최고 권위를 잃는 곳에서는 선동가가 등장한다고 하였다. 

이때 민중은 여러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으면서도 하나의 군주처럼 행동한다. 한 사람의 군주가 절대권력을 행사하면 참주정이라 부르면서, 다수가 절대권력을 행사하면 민주정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는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경고는 민주주의를 부정하려는 말이 아니었다. 그는 누가 권력을 갖느냐만큼 권력이 어떤 규칙 아래 행사되느냐를 중요하게 보았다. 민중이 통치하더라도 법 아래에서 통치한다면 민주정은 유지될 수 있다. 

반대로 민중이 법 위에 올라서면 다수는 집단적인 군주가 된다. 군주의 횡포가 한 사람의 분노에서 나온다면 다수의 횡포는 수많은 사람의 분노와 두려움이 하나로 합쳐질 때 나타난다. 개인은 혼자 있을 때 하지 못할 일을 군중 속에서는 쉽게 행한다.

광풍에 휩쓸린 아르기누사이 재판

이 문제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 준 사건이 기원전 406년 아르기누사이 해전 이후의 장군 재판이다. 아테네 함대는 스파르타 함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그러나 전투 직후 악천후가 닥치면서 침몰한 함선의 생존자와 전사자의 시신을 충분히 수습하지 못하였다. 

전쟁에서 이겼음에도 아테네 시민들은 격분하였다. 승리한 장군들은 구조와 수습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문제는 재판 방식이었다. 장군들의 행위와 책임은 서로 달랐으므로 개별적으로 심리해야 했다. 그러나 분노한 민회는 여러 장군을 한꺼번에 묶어 표결하려 하였다. 집단 재판은 당시 아테네의 적법한 절차와 충돌하였다. 일부 시민이 위법성을 지적했지만 민회의 분위기는 이미 격앙되어 있었다. 

민중에게는 무엇이든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 법적 이의를 눌렀다. 여섯 명의 장군은 한꺼번에 유죄 판결을 받고 처형되었다. 얼마 뒤 시민들은 재판을 몰아간 사람들을 다시 고발하였다. 그러나 잘못을 깨달았을 때 장군들은 이미 죽은 뒤였다.

이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장군들에게 아무 책임이 없었다는 말이 아니다. 구조 실패의 책임은 따져야 했다. 문제는 책임을 밝히기 위한 재판이 군중의 분노를 확인하는 표결로 바뀌었다는 데 있었다. 재판이란 피고인의 행위를 개별적으로 검토하고 증거에 따라 판단하는 절차이다. 

그러나 아르기누사이 재판에서는 분노가 증거를 앞섰고, 집단적 책임이 개인의 책임을 대신했으며, 신속한 처벌이 적법한 심리를 밀어냈다. 다수의 폭정은 언제나 법을 없애겠다고 선언하면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법보다 지금의 분노가 더 중요하다고 말할 때 시작된다.

이 재판 과정에서 소크라테스는 우연히 민회의 회의를 주관하는 위원단에 속해 있었다.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론’에 따르면 그는 장군들을 일괄 표결에 부치는 것이 법에 어긋난다고 보고 끝까지 반대하였다. 

다수가 격분해 있었고 고발의 위협까지 있었지만, 그는 불법적인 표결에 협조하지 않았다. 이 대목은 소크라테스가 민주주의 자체를 거부했다는 뜻이 아니다. 다수의 명령보다 법에 따른 판단을 우선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법의 수호를 선택한 소크라테스의 결단

그러나 몇 년 뒤 소크라테스 자신도 시민 배심원단의 재판을 받았다. 기원전 399년 그는 국가가 인정하는 신을 믿지 않고 새로운 신을 들여왔으며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혐의로 기소되었다. 

플라톤의 기록에 따르면 유무죄 표결은 큰 차이로 갈리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약 30표 정도만 반대로 이동했어도 무죄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유죄 판결 뒤에는 형량을 정하는 두 번째 표결이 이어졌고, 배심원단은 사형을 택하였다.

소크라테스의 재판을 곧바로 불법 재판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정식 고발이 있었고 시민 배심원단의 표결도 있었다. 바로 그 점이 이 사건을 더 어렵게 만든다. 절차의 외형이 민주적이었다고 해서 판결의 내용까지 정당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패배, 과두정 쿠데타와 삼십인 참주정의 경험,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알키비아데스와 크리티아스에 대한 반감이 재판 분위기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을 무시하기 어렵다. 철학자의 불편한 질문이 전쟁에서 패한 도시의 불안과 결합하면서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 것이다.

다수의 폭정은 반드시 많은 사람이 잔인해져야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시민들이 자신들의 불안과 분노를 해소할 희생양을 찾을 때도 발생한다. 다수가 한 사람을 위험인물로 규정하면 그 사람의 말은 내용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그가 누구와 가까웠는지, 어떤 평판을 얻었는지, 공동체의 정서에 얼마나 거슬리는지가 판단을 대신한다. 이때 재판은 죄를 확인하는 절차가 아니라 공동체의 분노를 승인하는 절차로 변한다.

플라톤은 스승의 죽음을 경험한 뒤 민주정에 깊은 불신을 품었다. ‘국가’에서 그는 민주정이 자유를 지나치게 확대하면 권위와 규율이 무너지고, 시민들은 자신을 통제하려는 모든 것을 억압으로 여긴다고 설명하였다. 

그 틈을 타 한 인물이 민중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등장한다. 그는 채무 탕감과 토지 분배를 약속하고 적을 만들어 민중의 분노를 조직한다. 처음에는 민중의 대표로 등장하지만,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경호대를 얻은 뒤에는 참주로 변한다. 민주정의 무질서가 참주정을 부른다는 것이 플라톤의 논리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문제를 보다 제도적으로 분석하였다. 그는 민주정이 무너지는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선동가의 무절제를 들었다. 선동가는 가난한 시민의 불만을 이용하고 부유한 시민을 공동의 적으로 만든다. 재산을 몰수하고 고발을 남발하며, 상대를 정치공동체의 정당한 구성원이 아니라 제거해야 할 적으로 몰아간다. 

위협을 느낀 부유층은 서로 연대하고, 민주정은 극심한 내분에 빠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러 도시에서 이러한 선동이 민주정의 붕괴를 불렀다고 기록하였다.

침묵을 강요하는 여론

여기에서 다수의 폭정은 단순히 다수가 소수를 이기는 현상이 아니다. 표결에서는 언제나 누군가가 이기고 누군가는 진다. 선거에서 51퍼센트가 49퍼센트를 이겼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폭정이라 할 수는 없다. 

다수의 폭정은 승리한 다수가 패배한 소수를 동등한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소수의 의견을 무시하는 데서 더 나아가 그들의 자유와 재산, 신앙과 표현, 정치 참여의 권리까지 빼앗으려 할 때 다수결은 폭정으로 변한다.

또한 다수의 폭정은 국가권력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법으로 처벌하지 않아도 사회의 다수가 한 의견만 허용하면 개인은 침묵하게 된다. 사람들은 법정에 끌려갈까 두려워서가 아니라 직장을 잃고, 친구를 잃고, 공동체에서 배척당할까 두려워 자기 생각을 감춘다. 

겉으로는 표현의 자유가 남아 있어도 실제로 말할 수 있는 의견의 범위는 좁아진다. 법률적 자유와 사회적 자유가 서로 다를 수 있다는 뜻이다.

알렉시 드 토크빌은 이 문제를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깊이 다루었다. 그는 1831년 미국을 방문한 뒤 미국 민주주의의 활력과 지방자치, 시민결사와 종교의 역할을 높이 평가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에서 다수의 권력이 지나치게 강해질 가능성을 보았다. 

알렉시스 드 토크빌(1805~1859)과 그의 역작 ‘미국의 민주주의’(De la dmocratie en Amrique·제1권 1835, 제2권 1840).

다수는 입법부를 장악하고 행정부와 배심제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여론까지 지배할 수 있었다. 토크빌이 두려워한 것은 다수가 소수를 감옥에 보내는 경우만이 아니었다. 다수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이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생각을 표현할 용기 자체를 잃는 현상이었다.

‘미국의 민주주의’ 제1권은 1835년, 제2권은 1840년에 출간되었으며, 그의 다수 폭정론은 정치적 강제와 지적·사회적 압력을 함께 다루었다.

토크빌의 통찰은 다수의 폭정이 왕의 폭정과 다른 모습을 가진다는 데 있다. 왕은 자신이 명령한다고 말한다. 다수는 국민이 원한다고 말한다. 왕에게 저항하는 사람은 권력에 맞선 사람으로 보이지만, 다수에게 저항하는 사람은 국민에게 맞선 사람으로 몰릴 수 있다. 

이 때문에 다수의 권력은 더 강한 정당성을 주장한다. 자신이 폭력을 행사하면서도 그것을 국민의 뜻이라고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크빌은 다수의 폭정을 막기 위해 민주주의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는 지방자치, 법률가 집단, 배심제, 언론의 자유, 종교, 시민결사와 같은 중간 장치가 다수 권력을 완화한다고 보았다. 

결사체로 다수의 폭정에 맞서기

개인이 거대한 국가와 직접 마주하지 않고 지역공동체와 결사체 안에서 협력할 때, 다수의 여론과 중앙권력에 저항할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수의 폭정을 막는 힘은 국가기관 하나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독립된 시민사회와 자치의 습관에서도 나온다.

제임스 매디슨은 토크빌보다 앞서 비슷한 문제를 헌법 설계의 관점에서 다루었다. 1787년 ‘연방주의자 논고’ 제10편에서 그는 파벌을 공동체 전체의 권리나 다른 시민의 권리에 반하는 이해관계와 충동으로 결합한 시민 집단이라고 설명하였다. 

소수 파벌은 다수결로 제어할 수 있지만, 파벌 자체가 다수가 되면 보통의 표결로는 막을 수 없다. 다수가 자기 이해를 법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매디슨은 파벌을 없애려 하지 않았다. 파벌을 없애려면 자유를 없애거나 모든 사람에게 같은 생각과 재산, 같은 이해관계를 강요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그것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자유를 파괴한다고 보았다. 대신 파벌의 해로운 결과를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넓은 영토, 많은 인구, 다양한 종교와 직업, 여러 지역과 경제적 이해관계가 존재하면 하나의 다수가 영구적으로 결집하기 어려워진다. 대의제와 연방제, 권력분립도 같은 목적을 가진다. 다수의 의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충동이 즉시 국가권력이 되지 못하도록 여러 단계를 두는 것이다.

‘연방주의자 논고’ 제51편에서도 매디슨은 정부가 통치자의 억압만 막아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사회의 한 부분이 다른 부분을 부당하게 억압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보았다. 다수가 공통의 이해관계로 결합하면 소수의 권리는 불안해진다. 그래서 권력이 권력을 견제하고, 사회 안의 다양한 이해관계가 서로를 견제하도록 헌법을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국가의 폭정과 사회의 폭정을 구분하였다. 선거로 뽑힌 정부라도 개인을 억압할 수 있지만, 사회 다수의 관습과 여론도 개인의 삶을 지배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사회가 자신의 생각과 생활방식을 따르지 않는 사람에게 압력을 가할 때, 법률적 형벌보다 더 깊숙이 인간의 내면을 통제할 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다수의 폭정은 몸을 가두는 데서 끝나지 않고 생각하는 방식을 통일하려 한다.

밀이 표현의 자유를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떤 의견이 틀렸다고 확신하더라도 그것을 말하지 못하게 해서는 안 된다. 억압된 의견이 옳을 수 있고, 완전히 옳지 않더라도 기존 진리의 잘못과 부족함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론이 사라진 진리는 살아 있는 판단이 아니라 외운 문구로 굳어진다. 소수 의견을 보호하는 것은 그 소수에게 베푸는 자비가 아니다. 다수가 자신의 오류를 발견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다.

여기서 다수의 폭정과 다수의 오류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다수도 잘못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잘못된 다수결이 폭정은 아니다. 정책 선택이 실패했더라도 소수가 다음 선거에서 반대하고 정권을 교체할 수 있다면 민주주의는 회복할 기회를 가진다. 

폭정은 다수가 자신의 결정을 수정할 통로까지 닫을 때 나타난다. 반대 의견을 금지하고, 언론을 통제하며, 사법부를 종속시키고, 선거 규칙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고치면 오늘의 다수는 내일의 다수까지 독점하려 한다.

다수의 폭정에 맞서는 5가지 안전장치

따라서 다수의 폭정을 막는 첫 번째 장치는 법치주의이다. 법치주의는 법을 많이 만드는 정치가 아니다. 통치자와 다수도 미리 정해진 일반적인 법에 복종해야 한다는 원리이다. 

특정한 사람을 처벌하기 위해 법을 만들거나, 표적을 정한 뒤 법적 이유를 찾아내면 그것은 법의 지배가 아니라 법을 이용한 지배이다. 아르기누사이 재판이 보여 준 위험도 여기에 있었다. 분노한 민회가 법적 절차를 번거로운 장애물로 취급했을 때 민주정은 자신의 원칙을 거슬렀다.

두 번째 장치는 기본권이다. 기본권은 다수의 선의에 맡겨진 허가가 아니다. 다수가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인정되는 권리이다. 표현의 자유는 인기 있는 말을 보호하기 위한 조항이 아니다. 다수가 듣기 싫어하는 말을 보호하기 위한 조항이다. 

종교의 자유는 다수 종교의 예배를 허용하기 위한 권리가 아니라 소수 종교와 무종교인의 양심까지 보호하기 위한 권리이다. 형사절차의 권리는 존경받는 시민보다 미움받는 피고인에게 더 절실하다.

세 번째 장치는 권력분립이다. 입법부의 다수가 법을 만들더라도 행정부와 사법부가 모두 그 다수에게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 독립된 법원은 법률이 헌법을 침해하는지 살피고, 피고인이 여론이 아니라 증거에 따라 재판받도록 해야 한다. 양원제와 대통령의 거부권, 헌법재판과 지방자치도 결정의 속도를 늦추고 재검토의 기회를 만드는 장치이다. 

민주주의에서 느린 절차는 무능의 표시로만 볼 수 없다. 격앙된 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내리는 것을 막는 안전장치이기도 하다.

네 번째 장치는 소수의 정치적 권리이다. 오늘의 소수는 내일의 다수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야당이 선거에 출마하고, 정부를 비판하며, 의회에서 토론하고, 언론을 통해 유권자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다수파가 반대파를 국가의 적으로 규정하여 정치활동의 권리 자체를 부정하면 민주주의의 경쟁은 끝난다. 선거는 남아 있어도 실제 선택은 사라진다.

다섯 번째 장치는 시민의 절제이다. 모든 위험을 헌법 조문만으로 막을 수는 없다. 시민이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배신자나 악인으로만 본다면 제도도 오래 견디기 어렵다. 

민주주의 시민에게 필요한 덕목은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지 않는 태도가 아니다.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면서도 상대에게 말할 권리와 다음 선거에서 이길 기회를 인정하는 태도이다. 민주주의의 성숙은 다수파가 얼마나 큰 권력을 얻느냐보다, 그 권력을 얻은 뒤 어디에서 멈출 줄 아느냐로 판단할 수 있다.

절제와 법이 다수를 다수답게 만든다 

다수의 폭정이라는 말이 소수의 특권을 지키는 구실로 쓰여서도 안 된다. 선거에서 진 세력이 모든 다수결을 폭정이라고 부른다면 공동체는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다. 조세와 예산, 행정정책과 공공사업은 다수결로 정할 수밖에 없다. 

다수결의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사실과 기본권이 침해되었다는 사실은 다르다. 소수 보호는 소수에게 거부권을 무제한으로 주는 원리가 아니다. 다수가 통치하되 소수가 시민으로 남을 수 있게 하는 원리다.

민주주의는 다수가 통치하고 소수가 복종하는 제도라고만 정의할 수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다수가 일정 기간 통치하되, 소수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고, 소수가 평화로운 방법으로 다수가 될 가능성을 보장하는 제도이다. 

선거에서 이긴 다수는 국가의 주인이 아니다. 잠시 통치권을 위임받은 세력이다. 국민주권은 현재의 다수파가 국민 전체를 독점한다는 뜻이 아니다.

고대 아테네의 경험은 민주주의의 가장 큰 적이 언제나 외부에서 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민주주의는 군주나 귀족에게 무너질 수 있지만, 민주적 절차를 거친 시민 자신의 결정으로도 무너질 수 있다. 분노가 법을 대신하고, 여론이 증거를 대신하고, 다수가 국민 전체를 자처할 때 민주주의는 폭정의 모습을 띠기 시작한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핵심 질문은 “누가 더 많은 표를 얻었는가?”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 다수는 법을 지키고 있는가?” “반대자의 권리를 인정하는가?” “자신의 결정을 다시 검토할 통로를 남겨 두었는가?”를 함께 물어야 한다. 다수결은 민주주의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다수를 다수답게 만드는 것은 표의 수이고, 민주주의답게 만드는 것은 절제와 법이다.

그러나 다수는 왜 법과 절제를 잊는가? 시민들은 왜 복잡한 문제를 차분히 판단하기보다 달콤한 약속과 분노를 자극하는 지도자에게 끌리는가? 다음 회에서는 민주주의가 반복해서 빠져드는 또 하나의 위험인 포퓰리즘을 살펴본다.


◆ 松山(송산) 정광제 

시인이자 역사·철학 연구자. 전 이승만학당 이사. 현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고문이자 철학 포럼 리케이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네 권을 출간했고, ‘후크고지의 영웅들’을 공동 번역했으며 인문서 ‘신화가 된 조선’ ‘다다미 위의 인문학’ ‘자유주의자의 그람시 읽기’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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