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 중 발생한 일명 '도끼만행사건'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유엔군 제3초소 부근. 이곳에 자라난 미루나무가 한반도를 뒤흔든 '전면전 위기' 불씨로 비화한 것은 삽시간이었다.
무성한 미루나무 가지가 관측 시야에 방해가 된다고 본 유엔군 측은 가지치기를 위해 한국인 노무단과 이들을 경호할 유엔사 소속 경비병, 미군·한국군 장교 등을 투입했다.
북한군 장교와 병사 등이 다가와 작업 중단을 요구했지만, 미군은 작업을 이어갔다. 그러자 현장에는 북한 경비병들이 더 많이 모여들었고, 북한군 중위가 "죽여"라고 소리를 지르자 북한 측은 가지치기에 사용된 도끼 등을 휘두르고 주먹질하며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미군 책임자인 아서 보니파스 대위와 함께 있던 마크 배럿 중위가 목숨을 잃었고 한국군 장교와 한미 병사들도 다쳤다. 참혹한 살해 장면은 미군 측이 동태를 기록하기 위해 사전에 설치해 둔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도끼만행사건' 당시 발단이 된 미루나무 조각 평택 캠프 험프리스 내 미2사단 박물관에 보관된 '도끼만행사건' 당시 미루나무 조각. [유엔사 최건 상병 제공] 이 사건으로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까지 치달았다.
사건 다음 날 한반도의 대북 방어 준비태세인 '데프콘'(Defence Readiness Condition)은 기존 4단계에서 3단계로 한 단계 격상됐다. 5단계로 구성된 데프콘은 한반도에서 평상시 경계강화 상태인 4단계로 유지된다.
6·25전쟁 이후 데프콘 단계가 상향 조정된 것은 당시가 처음이었다는 대목에서 위기가 얼마나 고조됐었는지 엿볼 수 있다.
워싱턴D.C에서는 미 수뇌부가 대북 조치 논의에 들어갔다. 당시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이 의장이 돼 특별대책반 회의가 소집됐다.
미국은 당시 유엔군사령관 리처드 스틸웰 장군의 제안대로 대대적인 군사작전을 통해 문제의 미루나무를 베어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미국 전설 속 나무꾼의 이름을 딴 이른바 '폴 버니언'(Paul Bunyan) 작전이 8월 21일 오전 단행된 것이다. 나무를 벨 미국 공병대원들과 함께 한국군 공수부대 등이 JSA에 진입했다.
폴 버니언 작전은 단순한 나무 베기 작전이 아니었다. 유사시 대비를 위해 판문점 쪽으로 미군 공격 헬기와 코브라 공격용 헬기, B-52 폭격기, F-4 폭격기, F-111 전폭기가 대거 떴고 서해상에는 미드웨이 항공모함이 대기했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나무 한 그루 베는 일을 엄호하기 위해 항공모함과 핵폭탄 적재가 가능한 전폭기가 출격했다는 사실은 북한에 대한 경고이면서 유엔사 경비부대의 안전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유엔군의 권위를 회복하려는 의지의 상징"이었다.
'도끼만행사건' 당시 발단이 된 미루나무 조각 평택 캠프 험프리스 내 미2사단 박물관에 보관된 '도끼만행사건' 당시 미루나무 조각. [유엔사 최건 상병 제공]
결국 사태는 폴 버니언 작전 종결 후 북한이 김일성 주석의 유감 표명 친서를 군사정전위원회 대표를 통해 전달하면서 일단락됐다.
다만 북한은 최근까지도 당시 사건을 "도발자들에게 세기를 넘어 털어버릴 수 없는 수치와 오욕을 남긴 날"(노동신문 2023년 8월 18일 보도)이라며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선전하고 있다.
도끼 만행 사건은 JSA가 지금의 모습에 가깝게 변모하는 계기도 됐다.
사건 전까지만 해도 JSA에는 정전협정 정신에 따라 군사분계선(MDL) 표식 없이 북한 측과 유엔사 측 초소가 양측 지역에 혼재돼 설치돼 있었고, 양측 경비병은 JSA를 자유롭게 통행했다. 말 그대로 양측이 공동으로 경비하는 '공동경비구역'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사건 이후 MDL 경계 표식물로 콘크리트 턱이 설치되고 남쪽은 유엔군이, 북쪽은 북한군이 분할 경비를 서게 됐다.
2018년 화해 무드 속에서 체결된 9·19 군사합의로 남북은 JSA 비무장화를 추진하기도 했지만, 이후 남북관계가 다시 악화하면서 결실을 보지 못했다.
유엔사 JSA 경비대대는 당시 희생된 보니파스 대위의 이름을 딴 '캠프 보니파스'로 오늘날 불리고 있다. 유엔사는 최근 내부 조직개편 차원에서 유엔사 경비대대를 중심으로 일부 관련 조직을 통합, 대령이 지휘하는 유엔사 '경비·정전이행 여단'(가칭) 창설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전히 남북은 대치중 (판문점=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28일 판문점에서 우리 군과 북측 경비병들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미루나무 가지치기 중 벌어진 일이 곧바로 전면전 위기로 번진 도끼 만행 사건은 한반도 평화의 토대가 생각보다 취약할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알렉시아 크로이저 유엔사 공보장교(캐나다 공군 소령)는 이번 도끼 만행 사건 50주기와 관련한 연합뉴스의 질의에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헌신한 이들의 희생을 다시 기억하는 계기"라며 "과거의 희생을 기리고, 공동경비구역과 경비대대의 중요성은 물론 정전협정 유지의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서 "50년이 지난 지금도 유엔사와 한국군 장병들은 공동경비구역에서 함께 임무를 수행하며 이 중요한 지역의 안전을 지키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