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 국민의힘 의원이 13일 국회에서 개최한 ‘5.18 민주화운동의 재조명’ 포럼을 두고 5·18기념재단을 비롯한 20개 시민사회단체가 공동성명을 내고 의원 제명을 거론했다. “포럼 내용이 잘못됐다고 판단한다면 반론 포럼을 열면 되지 국회의원 제명을 입에 올릴 일인가.” Ⓒ한미일보
지난 8월13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의 재조명’ 포럼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포럼이 있는 다음 날 5·18기념재단을 비롯한 20개 시민사회단체가 공동성명을 내고 포럼을 비판했다. 공동주최자인 이진숙 의원의 제명을 요구하고 ‘새역사국민운동’을 강하게 비판했으며, 포럼에서 나온 발언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까지 거론되고 있다.
나는 이 논란에서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다. 대한민국에서 어떤 역사적 사건이 국가적·사법적 평가를 받은 뒤에는 연구와 재해석의 대상이 될 수 없는가. 한번 공식적인 평가가 내려지고 국가적 기념의 대상이 되면 그때부터는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 신념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나는 5·18 민주화운동을 근본적으로 부정하지는 않는다. 8월13일 포럼 역시 ‘5·18 민주화운동의 재조명’이라는 이름으로 열렸고, 행사에서는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도 있었다. 문제를 제기한 것은 5·18이라는 사건의 존재 자체가 아니다. 지난 46년 동안 형성된 해석과 기억, 제도화 과정까지 모두 질문할 수 없는 영역으로 보아야 하느냐는 것이다.
역사적 사건과 그 사건에 대한 해석은 같은 것이 아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은 하나지만 그것을 설명하는 자료는 계속 발견될 수 있고, 기존 자료의 신빙성도 다시 검토될 수 있으며, 인과관계에 대한 판단 역시 달라질 수 있다.
군의 지휘 체계, 시민 무장의 과정, 무기고 습격 시점, 발포 경위와 명령 체계, 사망자의 발생 과정, 미국 정부의 인식과 대응, 유공자 선정과 보상제도의 형성 등은 각각 검토할 수 있는 연구 문제다.
그 가운데 어떤 문제는 이미 상당한 자료가 축적되어 있을 것이고, 어떤 의혹은 연구를 통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자료로 확인하면 된다. 바로 그것이 연구다. 답을 미리 정해놓고 그 답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만 질문을 허용한다면 그것을 과연 자유로운 역사 연구라고 할 수 있는가?
여기서 반드시 구별해야 할 것이 있다. 5·18의 역사적 성격을 인정하는 것과 5·18에 관한 모든 기존 설명을 인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이 구별을 하지 않으면 특정 세부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5·18 전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확대되고, 기존 연구에 대한 반론은 희생자에 대한 모독으로 바뀐다.
이렇게 되면 역사 논쟁은 너무 쉬워진다. 상대의 논문을 읽을 필요도 없다. 사료를 검토할 필요도 없다. 어떤 자료와 논리로 주장했는지 따질 필요도 없다. 질문한 사람에게 ‘극우’ ‘역사왜곡’ ‘5·18 폄훼’라는 이름표를 붙이면 논쟁이 끝나기 때문이다. 이것이 역사학인가? 이것이 민주사회가 역사 문제를 다루는 방법인가?
이번 사태에서 특히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제명’과 ‘해체’라는 말이다. 포럼의 내용이 잘못됐다고 판단한다면 반론 포럼을 열면 된다. 이영훈의 주장이 틀렸다면 그가 제시한 사료와 논리를 검증하면 된다. 발표자의 통계가 잘못됐다면 정확한 통계를 내놓으면 된다. 새역사국민운동의 연구가 부실하다면 학계가 논문과 자료로 무너뜨리면 된다.
그런데 왜 국회의원을 제명해야 하는가? 왜 단체를 해체해야 하는가? 제명은 사람을 공적 영역에서 퇴출시키는 것이고 해체 요구는 조직의 존립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주장에 대한 반박과 사람과 조직을 제거하라는 요구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특히 국회의원 제명은 가볍게 입에 올릴 일이 아니다. 헌법 제64조는 국회의원을 제명하려면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고 규정한다. 국민이 선거로 뽑은 대표를 국회에서 퇴출시키는 일이 그만큼 중대한 조치이기 때문이다. 논쟁적인 역사 포럼을 공동주최했다는 이유로 제명을 요구하기 시작한다면 앞으로 국회에서 민감한 역사 문제를 누가 다루려 하겠는가?
더 큰 문제는 이런 방식이 5·18에서 멈출 수 없다는 데 있다. 제주4·3의 기존 해석에 문제를 제기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여순사건에서 남로당과 좌익세력의 역할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친일인명사전의 선정 기준을 비판하면 역사왜곡인가? 독립운동가의 공적을 다시 검증하자고 하면 독립운동 폄훼인가?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한 기존 평가를 뒤집는 연구에는 또 어떤 정치적 기준을 적용할 것인가?
한번 역사에 정치적 금지선을 긋기 시작하면 그 선은 어느 진영에서 멈추지 않는다. 오늘 금지되는 질문은 5·18에 관한 것일 수 있지만, 권력이 바뀌면 내일은 이승만과 박정희가 될 수 있다. 다음에는 제주4·3과 여순사건이 될 수 있고, 그다음에는 친일 문제와 독립운동사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학문의 자유가 필요한 것이다. 학문의 자유는 내가 좋아하는 역사관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권력과 다수가 역사적 정답을 결정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
물론 학문의 자유가 허위사실을 마음대로 만들어낼 자유라는 뜻은 아니다. 연구자는 자료를 제시해야 하고 반증을 감수해야 한다. 명백한 사실 오류가 있다면 가차 없이 비판받아야 한다. 구체적인 발언이 현행법상 책임을 구성하는지는 법원이 엄격한 요건에 따라 판단할 문제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틀린 역사’와 ‘금지된 역사’를 구별해야 한다.
틀린 역사는 반박하면 된다. 새로운 사료로 고치면 된다. 더 좋은 연구로 밀어내면 된다. 그러나 금지된 역사는 질문 자체가 사라진다. 전자는 역사학의 영역이고 후자는 권력의 영역이다. 연구자가 사료를 읽기 전에 “이런 결론을 발표해도 처벌받지 않을까?”부터 걱정해야 한다면 그 사회에서 자유로운 역사 연구가 얼마나 가능하겠는가?
유공자 문제 역시 감정적인 구호보다 제도적 원칙으로 접근해야 한다. 국가가 일정한 공적을 인정하고 그에 따라 보상과 예우를 제공한다면 선정 기준과 절차가 적절했는지를 검증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은 제기할 수 있다. 동시에 개인정보와 명예, 관련 법률이 보호하는 권리 역시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느 범위까지 공개하고 검증할 것인지 토론하면 된다. 왜 그 질문 자체를 5·18 폄훼라고 몰아야 하는가?
나는 5·18 관련 단체들이 이번 포럼을 비판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지 않는다. 마음껏 비판할 자유가 있다. 반론 논문을 발표하고 공개토론을 요구하며 포럼의 주장이 틀렸다면 자료를 제시하면 된다. 바로 그것이 표현의 자유다. 그러나 자신들에게 허용되는 자유라면 상대방에게도 허용되어야 하지 않는가?
민주주의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 동의하는 제도가 아니다.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주장, 가장 불편한 질문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서 민주주의의 수준이 드러난다. 더욱이 5·18은 대한민국 민주화를 상징하는 역사다. 그렇다면 5·18을 둘러싼 논쟁부터 민주주의적인 방법으로 처리해야 하지 않는가?
나는 5·18을 부정하기 위해 질문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가 기념하고 학교에서 가르치며 46년 동안 방대한 연구가 축적된 사건이라면 몇 사람의 문제 제기로 흔들릴 이유가 없다. 잘못된 주장이 나오면 자료로 반박하면 된다.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5·18 연구는 이미 충분히 축적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질문이 나올 때마다 법부터 이야기하고, 국회의원 제명을 요구하고, 단체의 해체까지 거론한다면 사람들은 오히려 새로운 질문을 던지게 된다.
왜 토론으로 이기려 하지 않는가?
이것이 이번 논란에서 내가 가장 묻고 싶은 대목이다. 이영훈의 주장이 틀렸다면 깨뜨리면 된다. 새역사국민운동의 문제 제기가 사실과 다르다면 증명하면 된다. 그보다 강력한 대응이 어디 있는가? 그런데 왜 제명인가? 왜 해체인가? 왜 정치적 퇴출이 역사적 반박을 대신해야 하는가?
5·18은 이제 46년 전의 역사다. 더 많은 문서를 공개하고 더 많은 연구자를 참여시키며 서로 다른 연구 결과를 공개된 공간에서 충돌시켜야 한다. 그 과정에서 틀린 주장은 사라지고 자료를 견딘 주장은 살아남는다. 그것이 역사학이다.
5·18을 민주화운동이라고 부르면서 5·18에 관한 질문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역사일수록 가장 자유로운 토론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질문을 금지해서 보호해야 하는 역사가 아니라 어떤 질문이 나오더라도 자료와 논리로 답할 수 있는 역사가 되어야 한다.
성역은 질문을 두려워하지만, 역사는 질문을 먹고 자란다.
5·18을 성역으로 남길 것인가, 역사로 남길 것인가?
지금 우리가 정말 논쟁해야 할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 松山(송산) 정광제
시인이자 역사·철학 연구자. 전 이승만학당 이사. 현 한국근현대사연구회 연구고문이자 철학 포럼 리케이온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네 권을 출간했고, ‘후크고지의 영웅들’을 공동 번역했으며 인문서 ‘신화가 된 조선’ ‘다다미 위의 인문학’ ‘자유주의자의 그람시 읽기’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