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가 변질시킨 정의의 눈가리개. 로마 신화의 정의의 여신 저스타티아가 쓴 눈가리개는 이재명 정권 들어 정의를 가리는 도구로 변질되고 있다. 한미일보 그래픽
[목차]
① 감사원의 눈을 멀게 한 개혁
② 충성의 행정국가, 공무원 검증 시스템 실체
③ 검찰의 칼을 빼앗은 자들
④ 사법부의 인사정치, 대법관 증원법 이면
⑤ 개혁의 언어, 독재의 문법
“합리적인 행정 집행이 감사와 수사로 위축되어선 안 된다”
지난 7월 24일, 이재명 대통령이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던진 이 한마디가 감사원 개편의 시발점이었다. 이후 대통령실은 ‘정책감사 폐지 검토’를 공식화했고, 강훈식 비서실장은 11월 12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에서 “내년 상반기 중 감사원법을 개정해 정책감사를 제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감사원은 대통령 소속이지만, 행정부 전체를 견제하도록 헌법이 설계한 유일한 내치(內治) 감시기구다. 그러나 이제 그 눈이 정권의 통제 아래로 편입될 위기에 놓였다. 감사원의 눈이 멀어가는 지금, ‘개혁’이라는 단어는 권력의 면죄부로 변하고 있다.
감사원은 헌법이 보장한 유일한 행정부 내부 견제기관이다. 회계감사뿐 아니라 정책의 합리성과 절차적 정당성을 감시하도록 설계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통령에게 소속돼 있지만, 대통령의 행정행위를 감사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권력의 자기통제 장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재명 정부가 추진 중인 정책감사 폐지는 그 헌법적 균형을 근본부터 흔들고 있다.
대통령실은 이를 “감사 정치화 방지”라고 설명한다. 감사원이 과거 탈원전 정책, 재정 집행, 공공기관 채용 등에서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감사했다는 불만이 여권과 야권을 가리지 않고 제기돼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개편안은 감사원의 중립성을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 대상에서 ‘정책 결정’을 완전히 제외함으로써 감시 기능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문제는 이 논의가 감사원 내부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실 정책기획수석실 산하 TF에서 주도됐다는 점이다. 법제처와 행정안전부, 인사혁신처 등이 포함된 이 TF에는 감사원 인사가 단 한 명도 참여하지 않았다.
즉, 감시받아야 할 행정부가 스스로 감시기관의 구조를 바꾸는 셈이다. 그 결과 지난 10월 말 국회에 제출된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 발의 ‘감사원법 개정안’은 감사원의 감사범위를 회계와 직무 위반에 한정하고, 정책 감사 권한을 삭제하는 조항을 담았다. 이는 사실상 대통령실의 의중이 입법형식으로 구체화된 것이다.
감사원의 정책감사는 단순한 행정 간섭이 아니라 국민의 세금이 정책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검증하는 마지막 절차다. 이를 없애면 행정부는 “정책판단이었다”는 한 마디로 모든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국회 결산심사도 감사원의 감사결과를 토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정책감사 폐지는 국회의 결산 권한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효과를 낳는다. 사법부 또한 감사결과를 근거로 행정소송에서 국가 책임을 판단하기 때문에, 결국 입법·사법 모두가 행정 권력의 통제에서 멀어진다.
국제적으로도 이런 흐름은 역주행이다.
일본의 회계검사원(会計検査院) 은 내각에 속하지만, 법적으로 독립된 감사기관으로 운영된다. 최근 일본은 단순한 회계 점검을 넘어, 정책의 효과와 예산 집행의 합리성을 평가하는 ‘정책효과감사’를 강화하고 있다.
예컨대 2023년 회계검사원 보고서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처리 예산의 사용 효율과 정책 대응의 적정성을 세밀히 검증해 정부에 80건이 넘는 개선 권고를 내렸다. 이처럼 일본은 감사원이 행정부의 정책과정에 실질적으로 개입하지 않더라도, 국민의 세금이 정책으로 집행되는 전 과정을 감시하도록 제도화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정책을 감사하면 행정이 위축된다”는 논리로 감사원의 기능을 축소하려 하고 있다.
미국의 회계감사원(GAO, Government Accountability Office)은 의회 소속으로 정책 효율과 예산 집행 책임을 평가하며 정부의 견제장치로 기능한다.
민주국가일수록 감사 기능을 확대하고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시대의 추세지만, 한국은 정반대의 길로 향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이를 ‘공직사회 보호’라고 부른다. 하지만 실질은 ‘정권의 보호막’이다.
공무원의 실수는 덮이고, 예산 남용은 숨겨진다. 감사원은 회계사무소로 전락하고, 정책은 책임 없는 결정으로 남는다. 결국 정책감사 폐지는 감사원의 정치화를 막는 것이 아니라, 정권의 자기면책을 제도화하는 과정이다.
감시 없는 권력은 결국 스스로 부패한다. 감사원의 눈을 멀게 하는 순간, 민주주의의 마지막 거울은 깨진다. ‘정책감사 폐지’는 개혁의 이름으로 포장된 행정독재의 첫 완성 단계일지도 모른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법의 여신 저스타티아가 들고 있는 눈가리개는 원래 정의의 도구였다. 권력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겠다는 공정의 맹세였다. 그러나 지금 감사원의 눈가리개는 정의의 도구가 아닌 통제의 상징으로 변질되고 있다. 감시의 눈을 스스로 가린 순간, 국가는 더 이상 법 위에 있지 않고, 권력은 더 이상 국민을 바라보지 않는다.
다음 편에서는 공무원 검증 시스템이 ‘충성의 행정국가’를 어떻게 만들어가고 있는지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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