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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건 칼럼] 혁명은 시작했으면 성공시켜야만 한다
  • 조양건 자유고교연합 대외총괄
  • 등록 2026-08-02 19: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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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부정선거에 항거하는 올림픽공원에서의 무혈혁명이 어느덧 두 달째에 접어들었다. Ⓒ한미일보

6·3부정선거에 항거하는 올림픽공원에서의 무혈혁명이 어느덧 두 달째에 접어들었다. 폭염을 즐긴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혁명의 열기는 더욱더 활활 타오르고 있다.

혁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급격한 변화를 뜻한다. 대한민국의 리셋을 추구하는 ‘올공투쟁’이야말로 ‘제2의 건국’을 위한 혁명인 것이다. 

과거의 혁명이라고 하면 국내에서는 4·19혁명과 5·16혁명이, 국외에서는 프랑스대혁명이 떠오른다. 4·19혁명과 5·16혁명으로 대한민국은 급격한 변화를 맞이했다. 바스티유감옥을 습격하는 것에서 시작된 프랑스대혁명은 앙시앵 레짐(구체제)를 무너뜨리는 혁명이었다.

올림픽공원에서의 무혈혁명은 프랑스대혁명보다 훨씬 위대하다. 비무장·비폭력 혁명이기 때문이다. 프랑스대혁명은 바스티유감옥을 습격했지만 우리의 혁명은 가짜투표지가 있는 핸드볼경기장을 습격하고 불태우는 것이 아닌 지키고 있는 성숙한 혁명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지만 그 승자가 진실과 정의를 위한 것일 때 더 가치가 있다.

민초들로부터 시작된 위대한 혁명에 장동혁 대표를 비롯한 정치인들이 가세하고 있다. 이제는 누구나 부정선거를 이해하고 있고 말할 수 있는 그런 혁명이 임계점을 향해 가고 있다.

오죽 다급했으면 이재명을 위시한 부정선거 세력이 국정조사특위를 출범시켰고(한 달간 연장) 또 (그들의 꼼수와는 별개로) 특검까지 수용하겠다고 나섰겠는가? 

“가다가 포기하면 아니 간 만 못 하다”는 속담이 있다. 진실과 정의를 위해 투쟁을 시작했으면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반대로 거짓과 불의에는 처음부터 시작하지 말아야 하고 설혹 시작했다 하더라도 빨리 포기해야 한다는 뜻도 담겨 있다.

그렇다. 우리는 진실과 정의를 위해 시작한 것인 만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만 한다.

둑은 이미 무너졌고 고지가 바로 눈앞에 있다.

승리가 바로 눈앞에 있는 것이다.

애국시민 만세!

대한민국 만세!


조양건 자유고교연합 대외총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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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SKim33162026-08-03 04:44:44

    혁명이냐 개혁이냐
    혁명이란 단어와 개혁이란 단어를 그 객체를 정치사회적 구조에만 한정하고 판단한다면 개혁의 경우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간의 대화와 타협에 의해 쟁의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기에 양측의 극단적인 의견 대립도 드물고 폭력과 유혈사태가 생길 가능성 역시 낮아진다.
    역사적으로 보면 근대의 영국이나 일본이 그러한 경우라 할수 있다.

    혁명은 이야기가 다르다. 혁명이란 “지배자들이 기득권을 포기하기를 거절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피지배자들을 억압할 때에 피지배자들이 폭력등 강제적인 수단을 사용하여 내 쫓고 지배자들이 독점하고 있던 기득권을 빼앗아 재분배하는 급진적인 권력의 교체와 사회구조의 재편성”을 말하는 것이며 여기에는 폭력이 필수적인 수단이었기에 항상 유혈사태가 따랐었다.

    뿐만 아니라 개혁은 이미 확립되어있는 법질서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합법적인 것이라 할 수 있고 혁명은 기존 법 질서를 어기면서 일어나는 것이기에 개혁과 혁명은 그 과정에서 극명한 대조를 이루게 된다. 이 경우 정부에 의한 이 번의 6.3 선거에서 선거부정이라는 위법행위를 제쳐 놓는다면 형식 논리상으로 당선자들은 합법적인 당선자들이고 이에 항의하여 시위를 일으킨 시위대는 불법적인 난동 세력이 된다.
    그러나 기득권자들이 자기들이 저지른 선거부정이라는 불법적인 행위를 시정하기를 거부하고 이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국민들의 요구를 묵살하고 공권력을 과도하게 사용하여 이것을 단속하고 억압할 뿐 아니라 국민들이 이러한 공권력 남용에 대해 항의를 하거나 권력자들의 시책에 다른 의견을 갖는 것 행위 자체를 불법화하고 그러한 억압정책이 기득권자들과 관료들의 부정부패를 보호 내지는 방조하는 하는 데까지 미치게 되면 이러한 악성 불평등은 결국 전 국민적인 불만을 낳게 된다.
    이러한 전 국민적인 불만이 계속 누적되다 보면 고압솥이 폭발하듯 국민들이 더 이상 법에 문제의 해결을 맡기지 않고 스스로의 손으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봉기를 하게 된다.
    즉 법이 정의구현의 수단으로서 기능을 다하지 못 한다고 국민들이 판단하게 되면 국민들은 기득권자들이 불법적이라고 부르는 “봉기”를 하게 되고 이것을 기득권자들이 “공권력”이라고 부르는 폭력으로 진압하려들면 국민들 역시 자위수단으로 폭력을 사용하여 이것에 맞서게 된다.
    이러한 충돌의 과정에서 기득권자들에 의해 불법적이라고 분류되는 “국민들의 폭력”에 기득권자들을 지켜주는 공권력이 굴복하게 되면 기득권자들의 권력은 무너지고 사회구조가 완전히 뒤집어지는 “혁명”이 일어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혁명에 성공하려면 반드시 갖춰야 하는 것이 있다.
    개혁은 강자가 약자의 반발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혹은 좋은 마음으로 못 가진 자들에게 약간의 양보와 분배를 허락하는 것이지만 혁명은 전혀 다르다.
    혁명은 가난하고 못 배우고 힘도 없는 사람들이 모든 것을 다 갖춘 기득권자들을 상대로 싸워서 이들을 몰아내고 이들의 손에 있는 권력과 사회적 특권을 빼앗이 이를 재분배 하는 과정이다.
    다시 말해 혁명이란 힘없는 자가 힘센 자와 싸운다는데서 개혁과는 완전 반대로 보아도 될 것이다.
    그 것은 개혁의 주체는 기득권자인데 반해 혁명은 그 주체가 비 기득권자, 혹은 피 지배자이기 때문이다.

    그 혁명의 과정의 가장 두드러진 모습은 아주 오래 전에 나왔던 영화 “자랑과 정렬”에 나온다.
    당대 최 신식 무기로 무장한 프랑스의 나폴레옹의 군대와 그에 붙어 부역하는 스페인의 기득권자들로 구성된 매국노 집단의 군대가 합세해서 무자비하게 퍼부어 대는 포탄과 총탄에 맞서서 손에 든 것이라고는 삽과 괭이등 농기구 밖에 없는 무식한 시골 농군들이 무수히 쓰러져 가면서 덤벼들어 마침내 기득권자들을 몰아내고 수도 아빌라 성을 탈환하고 나폴레옹 군을 몰아내는데 성공하는 장면은 혁명을 일으키는 소위 혁명투사가 되려면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를 극명하게 설명해 준다.

    아래의 링크로 가시면 영화 "Pride and Passion - 자랑과 정렬" 에서 성을 깨부수는데 필요한 거대구경의 대포 하나 외에는 거의 맨손이나 다름없는 농민군이 아빌라성을 지키고 있는 중무장을 한 정부군과 맞서 싸우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실 수 있실 것이다.
    두번째 링크는 이 영화의 타이틀 씬인데 여기서 그 무거운 거대구경의 대포를 운반하는 일을 돕느라 한 손에 아이를 안은 여인이 다른 한손으로 밧줄을 잡고 끄는 장면을 그린 삽화는 정말 눈물이 쑤욱 솟아나게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s9vPWDJkh0
    https://www.youtube.com/watch?v=fR6ZeofsFFU

    혁명투사가 되려면 어떠한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가는 빨갱이들의 태양인 가짜 김일성 김성주가 잘 말해 주었다.
    김성주는 혁명투사로서 인정받을수 있는 조건으로 다섯가지를 갖추라고 했다고 한다.
    그 다섯가지는 모두 다섯가지 다른 과정으로 죽을 각오로 투쟁하라는 것인데 다섯가지를 다 듣고 보니 중복되는 게 있어 셋으로 줄여 말한다.
    그것은 “굶어죽고”, “얼어죽고”, “맞아죽고” 하는 이 세가지다. 혁명투쟁을 하는 도중 기득권자들의 개들에게 쫓기면서 제대로 몸을 덮지도 못하고 한데서 떨면서 자야하고 끼니도 못 얻어먹어 배 곯아야 하고 그러다가 잡히기라도 하면 악랄한 고문기술자에게 인간이 감내하기 어려운 지독한 고문에 시달려야하고 그러다 보면 투쟁 도중에 죽거나 病身이 되는 일이 허다할 것이다.

    재미 있는 것은 종북들이 민족의 원수요 친일의 상징으로 여기는 이승만 박사는 사실은 일경에 붙들려 고문을 하도 많이 받아 그 후유증으로 죽을 때까지 안면경련 증세로 시달렸으나 정작 종북 자기들의 태양 김성주는 아무런 그런 고문이나 굶주림과 추위로 고통받는 극단적인 투쟁경력이 없었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어서 물러난 이후 한국은 완전히 무정부 상태가 되었고 혼란 속에 국가의 모든 인프라가 사실상 마비되어 있는 모양세다.
    그 때부터 국론이 완전히 둘로 갈라져서 좌우의 세 대결이 아직까지 계속되어오고 있는 상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굶어죽고 얼어죽고 맞아죽어도 좋다는 이 세가지 각오를 가진 사람들은 그러한 각오를 가지라고 외친 김성주를 태양으로 모시는 종북집단이 아니라 그동안 病身처럼 잠잠히 있던 애국시민들이라는 웃기는 사실이 들어났다는 것이다.
    내가 김정은의 입장이라면 북한이 남한을 접수했을 때 종북과 태극기집단 중 어느 쪽을 더 쓸모있는 집단으로 여길 것인가 신중히 생각을 할 것이다.
    어릴 적부터 밤마다 촛불이나 들고 술판이나 벌리다가 낮이면 여관에서 남녀가 한 방에서 같이 딩굴면서 뗏십이나 하고 게으름이나 피우던 이런 밥버러지나 다름없는 족속들인 종북들에게 무엇을 시킬수 있단 말인가?
    그런 이유에서 나 같으면 일단 남한의 종북집단들은 수용소로 끌어다가 모두 죽여버리는 일부터 할 것이다.
    그리고 장기적인 분단으로 괴리되어온 남북을 문화적 사상적으로 재 봉합을 하고, 태극기들고 투쟁하던 남한의 애국세력 인사들은 사상적인 재교육을 시켜서 그간의 적대관계로 국력이 소모되는 바람에 지연되어온 경제건설을 하는데 종사하는 일에 투입할 것이다
    법리적으로 해석하면 박근혜, 윤석렬 두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당연히 각하나 기각이 되었어야 마땅했지만 개조까튼 헌재 나부랭이들에 의해 인용이 되었으며 사실상 범죄조직인 이재명 일당의 손에 한국의 정부가 넘어가고 말았다.
    그래서 지금은 해방후 이제까지 모든 국민이 자유민주주의를 누리는 서구적인 사회로 점진적으로 변해가던 개혁의 과정은 완전히 정지되었고 180도 돌이켜서 그 반대로 가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다시 말해서 자유 민주주의 사회로의 개혁으로 가는 길은 이재명 일당의 등장으로 완전히 막히고 끊어져서 앞으로는 더 이상의 전진이 불가능해 졌다는 것이다.
    이제부터 우리가 가야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건설을 위한 개혁 길은 끊어졌고 우리들 앞에는 곳곳에 맹수와 산적들이 매복해 있고 울퉁 불퉁 자갈과 진흙으로 뒤덮인 가파른 오르막 비탈 뿐이지만 자신을 완전히 내 던지는 희생정신과 숱한 땀과 피흘림이 요구되는 이 혁명의 길 외에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리는 모든 것을 오래 전에 죽어 완전히 썩어 문드러져 해골바가지만 남은 저 한심한 법이란 것에다가 맡겨 놓고 기다려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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