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항만공사는 포트와이즈를 통해 항행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사진=울산항만공사]
‘사라진 원유 90만 배럴’ 논란을 보며 먼저 떠오르는 질문은 하나다. 도대체 무엇이 두려워 이토록 간단한 사실조차 숨기려 했는가. 이 물음에 답하지 못하면, 정부가 아무리 “문제 없다”고 외쳐도 국민은 더 이상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이번 논란의 본질은 숫자 90만 배럴 자체에 있지 않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국민이 확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실조차 닫아버린 정부의 태도에 있다.
논란이 커진 직접 계기 중 하나는 한 유튜브 채널이 제기한 “중국을 거쳐 북한으로 흘러갈 가능성”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그것은 현재까지 확인된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추정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추정의 자극성보다, 왜 그런 추정이 순식간에 사실처럼 소비되는 환경이 만들어졌느냐는 점이다.
정부가 제때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이 비어 있는 자리는 언제나 추정이 차지한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상상력은 더 대담해진다. 정부가 만들어 놓은 정보의 공백 위에서 의혹은 증식하고, 국민은 그 공백을 스스로 메우려 든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국가기밀이 아니다.
배 이름과 날짜다. 해당 원유를 실어온 선박의 선명, 입항 일자, 그리고 문제의 90만 배럴을 싣고 나간 선박의 선명만 공개해도 기본적인 검증은 가능하다.
선박 항적은 상용 추적망과 항만 기록을 통해 상당 부분 확인할 수 있다. 적어도 정부 설명이 맞는지 틀린지, 어떤 경로를 거쳤는지, 어디까지 확인 가능한지의 출발점은 마련된다.
그런데도 석유공사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런 가장 기본적인 정보조차 국민 앞에 내놓지 않았다. 이쯤 되면 국민이 묻는 것은 “원유가 어디로 갔느냐” 이전에 “왜 숨기느냐”가 된다.
정부는 늘 이런 식이다. 문제가 터지면 핵심 사실은 닫아걸고, 결론만 통보한다. “걱정할 것 없다.” “문제 없다.” “이상 없다.”
그러나 민주국가에서 정부가 국민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은 맹목적 신뢰가 아니다. 신뢰는 검증 가능한 정보 위에서만 성립한다. 설명 없는 안심은 안심이 아니라 통보다. 검증 없는 해명은 해명이 아니라 자기 주장이다.
정부가 증거 대신 태도를 내세울수록, 국민은 더 깊이 의심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이 사안이 원유 공급에 대한 불안이 커진 때에 일어난 일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숫자는 설명되지 않고, 경위는 불분명하며, 검증 가능한 정보는 차단된다면 각종 해석과 추정이 개입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다.
그 뒤에 나타나는 유튜브, 음성적 소문, 과장된 해석은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원인은 늘 같다.
정부가 국민을 정보의 주체가 아니라 관리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알려줄 만큼만 알려주고, 믿으라는 만큼만 믿으라고 한다. 이런 오만한 통치 습관이 결국 더 큰 불신을 부른다.
이번 논란을 두고 일부는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너무 키우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그러나 그 비판은 절반만 맞다. 확인되지 않은 주장이 문제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먼저 비판받아야 할 쪽은, 확인 가능한 최소 사실조차 공개하지 않은 정부다.
추정이 사실처럼 소비되는 사회는 대개 시민이 지나치게 의심이 많아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검증 가능한 정보를 차단했기 때문에 만들어진다.
정부가 입을 닫을수록, 국민은 의심으로 대답한다. 이것은 국민의 병이 아니라 정부의 자업자득이다.
이미 팔린 90만 배럴에 대한 석유공사와 산업통상자원부의 책임은 앞으로 감사원 감사나 추가 점검을 통해 가려질 것이다. 행정상 실수였는지, 관리 부실이었는지, 보고 체계의 혼선이었는지, 다른 문제가 있었는지는 차후 드러날 수 있다.
그러나 책임 규명의 절차와 별개로, 이미 무너진 신뢰는 현재진행형의 손실이다.
재고는 다시 채우면 된다. 숫자는 정정하면 된다. 하지만 신뢰는 한 번 바닥을 치면, 다시 끌어올리는 데 훨씬 더 긴 시간이 걸린다. 정부가 지금 잃고 있는 것은 원유가 아니라 신뢰 자산이다.
이번 사안이 남긴 교훈은 명확하다.
국민은 더 이상 “정부가 그러니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는 시대에 살지 않는다. 특히 선박, 항만, 물류, 에너지처럼 기본 자료 추적이 가능한 영역에서는 더 그렇다.
숨길수록 오히려 더 많이 들킨다. 닫을수록 더 많은 의혹을 부른다. 정부가 아직도 이 단순한 진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비슷한 논란은 반복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정부는 음모를 탓하겠지만, 실제로 자신을 무너뜨리는 것은 음모가 아니라 불투명성이다.
두려워해야 할 것은 ‘사라진 원유 90만 배럴’이라는 표현이 아니다.
두려운 것은 국민이 정부 설명을 더 이상 첫 번째 진실의 출발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현실이다.
선명과 날짜만 공개했어도 끝났을 논란이, 정부의 침묵과 정보 차단 탓에 정권 전체의 신뢰 문제로 번졌다. 이것이야말로 이번 사안의 진짜 비용이다.
원유보다 더 비싼 것이 있다. 신뢰다. 그 신뢰를 스스로 걷어차고 있는 정부가, 과연 누구를 향해 책임을 묻겠다는 것인가.